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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충격 어떻게 줄일까…원화로 대미 투자 방안 찾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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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충격 어떻게 줄일까…원화로 대미 투자 방안 찾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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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통화 스와프 논의 진전 없어
미 재무부의 달러 교환 등 방안 거론
달러 확보 위해 외평채 발행할 수도
어느 쪽이든 3500억 달러 마련은 불가
전문가들 "직접 투자 비중 최소화해야"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워싱턴으로 출국하기 직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워싱턴으로 출국하기 직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미국을 방문 중인 정부 협상단이 3,500억 달러(약 49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실행을 위해 원화로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은 달러 직접 투자 시 발생할 외환보유고 충격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한미 간 무제한 통화 스와프 체결이 쉽지 않은 상황도 감안했다.

한국은 7월 미국과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대미 투자가 이뤄질 경우 우리 외환시장의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해 왔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 도착해 "미국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3,500억 달러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의 84%(8월 말 기준)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한미 통화 스와프를 맺는 것이다. 통화 스와프는 외화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은행 간 체결한다. 자국의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일종의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이다.

그러나 미국 측은 스와프 체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스와프 체결 권한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있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와 협의로 성사될 사안도 아니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16일 브리핑에서 "미국과 통화 스와프는 무제한이든 유제한이든 (논의의) 진전이 없다"며 "큰 의미를 두거나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배경이다.

2025년 원·달러 환율 추이. 그래픽=강준구 기자

2025년 원·달러 환율 추이. 그래픽=강준구 기자


통화 스와프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으로 정부가 택한 방식이 원화를 통한 투자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원화를 통한 다양한 투자 방식이 열려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 원화를 보내면 미국 정부가 달러로 교환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미 재무부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면 정부가 해당 계좌에 원화를 송금하고, 미 재무부가 송금액 만큼 달러를 투자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달러 환전 재원은 미 재무부가 운영하는 외환안정기금(ESF) 등이 지목된다. 앞서 아르헨티나가 미국 정부와 이런 방식으로 200억 달러 규모의 교환 협약을 맺었다. 다만 재무부의 ESF 규모는 2,210억 달러여서 한국의 대미 투자액 전체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방안이 채택되더라도 장기간에 걸친 분산 투자가 불가피한 셈이다.


원화를 통한 투자 방식과 별개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달러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가능성도 거론된다. 외평채는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조성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외화 표시 국채다. 해외 투자자가 외평채를 매입하면 외환보유액이 늘어나게 된다. 다만 국가 부채인 만큼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주는 데다, 이 역시 우리 정부가 약속한 대미 투자 펀드 규모를 감당할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 국회가 승인한 올해 외평채 발행 한도는 35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

원화 투자와 외평채 발행, 어느 쪽이든 대미 투자 펀드 규모를 마련하기는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미 투자금을 "선불(up front)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재차 주장한 것도 협상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정부가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금액을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협상을 타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대미 투자액 가운데 현금 출자 비중은 최대 30% 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정부 보증을 통해 충당하는 수준이면 외환시장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세종=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