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캄보디아 해안도시이자 대규모 범죄 단지가 몰려 있는 시아누크빌의 그레이트월파크 단지 외부에 철조망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캄보디아 당국은 이곳을 급습해 인신매매·납치·고문 등과 관련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시아누크빌/로이터 연합뉴스 |
한국 청년들을 캄보디아로 유인해 감금·착취한 사건이 사회적 충격을 주는 가운데 미국과 영국도 인신매매와 투자 사기 등을 결합한 이른바 ‘돼지 도살(Pig Butchering)’ 사기 범죄를 저지른 조직에 대한 단속과 제재에 나섰다.
미 법무부가 14일(현지시각) 캄보디아 등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돼지 도살’ 사기 조직의 암호화폐 지갑을 압류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돼지 도살’ 사기는 오랜 기간 피해자의 신뢰를 얻어낸 뒤 한꺼번에 돈을 빼앗는 수법(데이트 스캠과 투자유도 사기 행각 등)으로, ‘돼지를 살찌운 뒤 도살한다’는 은유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법무부는 브루클린 연방법원이 공개한 기소장을 인용해 사기 조직의 우두머리이자 주범인 천즈(37·가명 빈센트) 프린스 그룹 회장이 보유한 약 150억달러(약 21조원) 상당의 비트코인 12만7271개를 몰수하기 위한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최근 캄보디아에 탐문 수사를 다녀온 오영훈 부산 서부경찰서 수사과장이 프놈펜에서 촬영한 한 범죄단지. 오영훈 수사과장 제공 |
이번 소송은 미 법무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몰수 조처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오늘 조치는 인신매매와 사이버 금융 사기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조치 중 하나”라며 “강제 노동과 사기로 구축된 범죄 제국을 해체해 미국은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도난당한 자산을 회수하는 등 취약 계층을 착취하는 사람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도주 중인 천즈 회장은 캄보디아 전역에서 사기 시설을 운영하며 수십억 달러 암호화폐를 벌어들이고 수백명을 인신매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무부는 천즈 회장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최대 4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이민자 출신인 천즈 회장은 2015년께부터 30개국 이상에서 수십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캄보디아 대기업 프린스 그룹의 설립자 겸 회장이다. ‘프린스 현대 광장’, ‘프린스 은행’ 등으로 알려진 프린스 그룹은 표면적으로 부동산 개발과 금융 서비스 그리고 소비자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천즈 회장과 그룹 최고 경영진은 비밀리에 이 기업들을 기반으로 캄보디아 전역에서 사기성 암호화폐 사기 조직을 운영하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초국적 범죄 조직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이들이 주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 범죄의 일종인 ‘몸캠피싱’이나 자금 세탁, 다양한 사기 및 범죄, 불법 온라인 도박, 인신매매, 고문, 노예노동자 착취 등을 통해 범죄 수익을 챙겼다는 게 미국 재무부 설명이다. 이들은 범죄 수익의 일부를 호화 여행과 오락에 사용했고 시계, 요트, 개인 제트기, 휴가용 주택, 고급 수집품, 희귀 미술품(뉴욕 경매장에서 구입한 피카소 그림 포함) 등 사치스러운 구매를 해왔다.
지난달 17일 미얀마 동부 미야와디 타운십에 있는 케이케이(KK)파크 단지 전경. 중국인과 미국인 등을 대상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 사기가 이뤄졌다. AFP 연합뉴스 |
영국 외무부와 영연방개발부(FCD)도 보도자료를 통해 프린스 그룹 및 그룹과 연계된 레저·엔터테인먼트사 ‘진베이 그룹’, 암호화폐 플랫폼 ‘바이엑스 거래소’, 프린스 그룹 자회사가 건설한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대규모 스캠 단지 ‘골든 포천 리조트 월드’ 등에 제재를 가했다고 밝혔다.
영국 당국은 천즈 회장을 비롯한 이들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하고 런던 부동산 시장에 적극 투자해 왔다고 밝혔다. 북런던의 1200만파운드(약 230억원) 규모 저택, 런던 시내의 1억파운드 규모 사무용 건물, 남런던 지역에 있는 아파트 17채 등이 포함된다. 이번 제재로 이들 기업과 자산은 즉시 동결됐고 영국 금융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영국 정부는 캄보디아와 미얀마 등 동남아 전역의 스캠 센터들이 가짜 구인 광고로 외국인들을 폐쇄된 카지노나 특수 목적 시설로 유인하고 고문으로 위협하며 온라인 사기에 가담하도록 강요한다고 밝혔다. 이베트 쿠퍼 외무장관은 “끔찍한 스캠 센터 배후에 있는 이들이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망치면서 그 돈을 보관하기 위해 런던 주택을 사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미 재무부는 프린스 그룹을 국제적 범죄 조직으로 지정하고 불법 행위에 연루된 피고인과 여러 관련 개인 및 단체에 대한 146건의 제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캄보디아 소재 금융서비스 대기업 후이원 그룹을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차단하는 조처를 확정했다고도 밝혔다. 후이원 그룹은 2021년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이버 사기·탈취로 확보한 최소 40억달러(5조7천억원) 규모의 가상화폐를 세탁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3700만달러는 북한이 해킹한 가상화폐라고 재무부는 덧붙였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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