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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청-국수본-공수처 ‘사건 관할’ 혼선 우려 “수사권 정밀 설계를”

동아일보 최미송 기자,구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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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청-국수본-공수처 ‘사건 관할’ 혼선 우려 “수사권 정밀 설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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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범죄 피해자에게 묻다] 〈4·끝〉 ‘수사기관 난립’ 교통정리 필수

구체적 수사범위-권한 정립 안되면… 한 사건 두고 불필요한 중복수사나

책임 회피해 ‘수사공백’ 벌어질수도

“신설 중수청법 꼼꼼히 마련하고… 공수처-경찰청법도 함께 개정해야”

4조 원대 피해 규모가 발생한 다단계 ‘스캠(사기) 코인’ 사건인 콕(KOK) 코인 사건은 2022년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해자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만 90만 명에 이르는 콕 코인 사건은 울산경찰청과 서울동부지검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자들의 고소가 접수되며 검경이 각각 수사에 착수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직접 수사 개시를 할 수 있는 사건은 제한적이었지만,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2대 범죄에 대해선 검찰도 수사할 수 있다 보니 1, 2차 수사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수사하게 된 것이다.

콕재단은 2021년 4월부터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토큰 1개당 100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한때 개당 7달러까지 상승했던 가격은 지난해 초 0.01달러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콕재단 측은 시세를 끌어올리기 위해 더 많은 투자자를 모아오면 수당을 더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으로 돈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 피해자 “수사기관 교통정리 안 돼 6개월 날려”

다단계 사기 사건의 특성상 신속한 초동 수사가 필요했지만 1, 2차 수사기관은 중복 수사를 이어 갔다. 결국 사건이 접수된 지 수개월 뒤에야 울산경찰청이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아 통합 수사에 착수했다.

콕 코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강모 씨는 14일 “경찰이든 검찰이든 한 곳에서 빠르게 수사가 되길 바랐지만, 그렇지 못해 초기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수사기관끼리 교통정리가 안 돼 고소한 뒤 6개월 가까이 시간을 허비했고, 지난해 겨우 울산지검이 주범 등을 기소했지만 피해 회복은 여전히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울산지검은 지난해 12월 30일 콕재단 운영자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올 6월 공범 5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그나마 구속됐던 운영자도 올 6월 10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보석 소식에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냈던 피해자들은 울산지검으로 사건을 이송한 데 대해 “수사 축소”라고 주장하며 담당 검사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기도 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내년 10월부터 검찰청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으로 분리되면 수사기관 구조가 복잡해져 중첩 수사로 인한 피해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와 공수처에 더해 중수청까지 신설되면 사건 관할을 둘러싼 기관 간 혼선은 불가피하며, 특히 대형 경제 사건이나 비리 사건에서는 충돌 양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어느 기관이 어떤 사건을 수사할지, 신설되는 중수청을 포함해 수사 범위와 권한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한 사건을 두고 여러 기관에서 중복 수사해 불필요한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로 수사 책임을 회피해 어느 곳에서도 수사하지 않는 수사 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개정안에 따르면 중수청은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대형참사 △마약 △내란·외환 등 8대 범죄 수사를 맡게 된다.


● 고위 공직자 둘러싼 ‘핑퐁 수사’ 벌어져


2020년 7월 공수처가 신설된 후 이 같은 혼란이 몇 차례 나타나기도 했다. 감사원 3급 간부의 뇌물수수 의혹은 검찰과 공수처 간 ‘핑퐁 사건’이 된 대표적 사례다.

고위 공직자가 저지른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공수처는 감사원 3급 간부인 김모 씨의 15억여 원 뇌물 사건을 수사한 뒤 2023년 11월 검찰에 특가법상 뇌물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해 달라며 사건을 넘겼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판사와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갖고 있고 나머지 고위 공직자에 대해선 수사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공수처는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는 공수처법에 나와 있지 않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결국 해당 사건은 1년여간 방치되다가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검찰이 보완 수사해 처분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김 씨에 대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으면서 공수처 신설 당시 공수처법에 보완 수사 주체, 요청 근거, 기소 범위 등을 명확히 하지 않아 발생한 혼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하이브 방시혁 의장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사건의 수사 주도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신경전을 벌인 상황도 이 같은 수사권 조정 미완의 단편으로 볼 수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2월 방 의장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남부지검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금융감독원 조사가 진행 중이란 이유로 이를 두 차례 반려했다.

그러다 세 번째 신청 만에 올 6월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돼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7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도 방 의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검찰은 해당 사건을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내려보내 수사 지휘를 하며 중복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 “민감 사건, 수사기관장 협의 절차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혼란을 막으려면 중수청법을 꼼꼼하게 설계하고 이와 연계될 수밖에 없는 공수처법과 경찰법 등 수사기관 관련 법률도 함께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면서 사건 이첩의 기준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다면 앞서 보인 수사기관 사이 ‘핑퐁 게임’이 재연될 것”이라며 “비리의 정도가 심하거나 복잡한 사건일수록 여러 인물이 얽혀 있는 만큼 경찰, 중수청, 공수처, 국수본을 포함해 앞으로 관할과 범위 등에 대한 규정을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의 피해가 크거나 고위 공직자가 얽혀 있는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는 관할과 수사 주체를 정리하기 위해 수사기관장 간 협의 절차를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경찰은 현재 포괄적인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외의 수사기관들은 특수한 분야에 대한 제한적인 수사권만을 가지고 있다”며 “중수청이 다룰 ‘중대범죄’의 기준은 물론이고 공수처도 다시 범위를 정립하지 않는다면 수사기관 간 경쟁 과열만 심해져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구민기 기자 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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