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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실패한 적 없습니다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매일경제 최원석 기자(choi.wonseo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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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실패한 적 없습니다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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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기에 '실패연구소장'이 됐느냐고 묻자, 의미심장한 웃음과 머쓱한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 있게 '실패한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남자는 조성호 KAIST 실패연구소장(전산학부 교수)이다.

모든 게 원하는 대로 풀렸던 건 아니다. 으레 인생이 그러하듯 실패와 좌절이 더 많았다. 연구는 예상대로 안 되고, 원했던 학술지에 냈던 논문이 거절되고, 연구개발(R&D) 과제 공모에서 떨어지는 등 셀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가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가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소장은 "결과가 예상대로 안 나오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에 바쁘다"며 "될 때까지 도전한다면 실패란 없다"고 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조 소장의 실패 사례는 포기할 때, 혹은 세상을 떠날 때나 생길 예정이다.

10월 13일은 '세계 실패의 날'이다. KAIST는 국민 누구나 일상 속 작은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전국 캠페인을 시작한다. 실패담을 나누면서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고, 혁신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조 소장의 말처럼 이 경험담은 '진짜 실패'가 아닌 다음 도전을 위한 준비다.

이광형 KAIST 총장도 지난 1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실패담을 공유했다. 이 총장은 "학교 기금 모금을 위해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매번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난다"며 "거절당하고 나올 때면 뒤통수가 화끈거린다"고 했다. 총장 임기 4년 동안 모금한 금액만 2800억원으로 유례없는 성과를 달성했지만, 그 배경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던 것이다.

KAIST가 사람들의 실패담을 모으려는 이유는 실패의 빅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다. 실패의 빅데이터를 모아 혁신의 효율을 높이는 작업이다. 조 소장은 "실패 없는 혁신은 불가능하지만 실패에는 비용이 든다"며 "실패 이야기를 나누면 똑같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가 없다"고 캠페인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목표는 실패를 바라보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조 소장은 "한국은 지금까지 남들이 했던 걸 따라 했기 때문에 실패 없이도 성공할 수 있었다"며 "우리 사회엔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깊게 깔려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패는 아프고 두렵다. 다음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실력과 여유다. 조 소장은 학생들에게 "다음 기회가 확실하게 있다고 믿으라"고 가르친다. 그는 "기회는 계속 오는데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며 "조급하게 굴지 말고 충분한 실력과 확신이 생겼을 때를 기다리다가 기회를 잡아챌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조 소장은 실패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뿌리 깊은 목표를 강조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실패해도 다음 단계를 고민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패에 일일이 좌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소장의 목표는 "내가 연구한 기술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그 목표가 있었기에 수차례의 연구 시행착오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었다. 조 소장은 "갈 길은 먼데 눈앞의 실패를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이 노벨상 2관왕으로 축제 분위기인 요즘, 한국 과학계에 필요한 것도 실패다. 조 소장은 "혁신은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패 없이 이룬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고지식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20년 이상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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