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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원대 원-달러 고환율, IMF때보다 높아…“고착화 우려”

동아일보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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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원대 원-달러 고환율, IMF때보다 높아…“고착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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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세전쟁 재개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한때 1432원을 돌파하며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1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환전소에 환율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2025.10.12/뉴스1

미중 관세전쟁 재개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한때 1432원을 돌파하며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1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환전소에 환율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2025.10.12/뉴스1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원-달러 평균 환율이 1400원대를 훌쩍 넘긴 것은 ‘약달러’ 시대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연초 대비 9%가량 하락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통화 가치가 오르기 쉽지만 오히려 원화 가치는 크게 하락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원-달러 환율은 상승) 수출 가격이 저렴해져 수출에 유리한 편이지만 이젠 이런 수혜마저 노리기 힘든 시대가 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이 무역장벽을 높여 수출 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난항을 겪는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협상이 합의되기까지 외환시장이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약달러’ 국면에 더 약세인 원화

12일 금융 정보 플랫폼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달러 인덱스는 10일 기준 98.98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달러 인덱스가 108.49였던 것 대비해 8.77% 감소했다. 이는 주요 6개 통화의 가중 평균에 비해 달러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야 하는데 올해는 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국내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변수가 더 강하게 작용해 환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불거진 비상계엄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은 올해 첫 거래일부터 1466.6원으로 시작해 1~4월 내내 월평균 1400원대를 지켰다.

5월부터 월평균 1300원대 중후반으로 다소 진정되나 싶었던 환율은 지난달 25일 다시 1400원대를 돌파했다. 미국과 대미 투자 방식이 합의되지 않아 대미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협상이 타결될지 미지수”라며 “당분간 1400원대 등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이 계속된다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1394.97원)의 연평균 환율을 넘겨 역대 최고치를 찍을 가능성이 있다. 올해 1월 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주간 거래 종가 기준)은 이미 1412.23원이다.


●“1400원대 환율 ‘뉴노멀’ 대비해야”

뉴시스

뉴시스


고환율이 고착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동안 1300원대 후반~1400원대의 환율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당장 한국은행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대미 무역 흑자가 너무 많다며 상대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지를 정기적으로 검토한다. 이달 1일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효과적인 국제 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고환율 시기에 누리던 수출 증대 효과도 미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입 원가 상승으로 생산자 물가만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수출이 잘 안 될 것 같다는 심리 탓에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건데 수출이 잘 될 리가 없을 것”이라며 “보호무역주의가 이어지면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 위축에 대한 우려도 있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투자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10% 오르더라도 추세적으로 원화 가치가 10% 넘게 떨어지면 결국 남는 것이 없기에 한국 투자를 꺼릴 수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은 1280~1480원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환 헤지나 보험 등 환율 급등에 대비하지 않은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약화할 수 있기에 기준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자금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으로 집중된 수출을 분산시켜 달러가 들어오는 통로를 다변화하고, 중앙은행이 금을 매입해 외환보유고 자산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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