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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 마지막 메시지 "의회와 언론이 전쟁 막아야"

매일경제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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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 마지막 메시지 "의회와 언론이 전쟁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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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사진)가 발표한 '전후 80년 개인 소견'에 대해 일본 각지에서 잔잔한 반향이 나오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실적을 만들기 위해 기존 내용을 반복했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전쟁의 원인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이데올로기 색채 없이 객관적인 표현으로 문제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최근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편협한 내셔널주의(자국 우선주의)와 차별, 배외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높이 살 만하다는 분석이다.

이시바 총리의 전후 80년 소감은 A4 용지 7장에 6000자로 돼 있다. 전후 50년과 60년, 70년 때는 각의(국무회의) 결의를 거친 정부 공식 담화가 나왔다. 이번은 자민당 내 강경 보수층 반대로 이시바 총리는 담화가 아닌 개인 소견을 발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관심이 모였던 새로운 역사 인식과 주변국 침략에 대한 반성 등은 소견에 담기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과거 담화를 바탕으로 역사 인식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며 "(소견은) 반성이라든가 사죄라든가 그런 기분을 포함한 것이지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 대신 이시바 총리는 당시 일본 정부가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일본제국 헌법, 정부, 의회, 언론, 정보 수집·분석 등 5가지 주제로 나눠 이를 심도 있게 설명했다.

그는 "일본제국 헌법에는 군과 정치가 분리돼 있어 제도적인 문민통제가 부재했다"며 "정당은 정쟁과 스캔들 중심으로 권력 투쟁을 벌이면서 신뢰를 상실했고 결국 군부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분석을 배경으로 그는 '오늘의 교훈'도 제안했다. 우선 헌법이나 법률로 문민통제가 마련돼도 운용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무책임한 대중영합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정치가로서의 긍지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감정적인 판단을 경계했다. 후자가 중요해지면 국가의 진로를 그르친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제동장치 역할로 의회와 언론의 기능을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사명감을 지닌 저널리즘을 포함해 건전한 언론 공간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상업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며 편협한 내셔널리즘과 차별·배외주의를 용납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밝은 미래를 열 수 없다"며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한 안보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지금이야말로 역사에서 배우는 중요성을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소견을 마무리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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