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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들고 떠났다가 나흘 만에 복귀한 프랑스 총리… 여전히 ‘가시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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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들고 떠났다가 나흘 만에 복귀한 프랑스 총리… 여전히 ‘가시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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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만에 자진사퇴→마크롱 재임용
"재정적자 해결 위해 수락" 밝혔지만
이틀 내 새 장관 임명·예산안 제출해야
격분한 야당 "내각 불참·불신임할 것"


자진사퇴했다가 나흘 만에 재임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1일 파리 외곽의 라이레로즈에 있는 경찰서를 방문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자진사퇴했다가 나흘 만에 재임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1일 파리 외곽의 라이레로즈에 있는 경찰서를 방문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짧은 재임 기록(27일)을 남기며 지난 6일(현지시간) 자진사퇴했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나흘 만인 10일 복귀했지만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8%에 달하는 프랑스가 연말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르코르뉘 총리는 당장 오는 13일까지 새 예산안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앞서 새 내각을 구성할 장관도 임명해야 하지만 상당수 정당이 불참을 선언했다.

르코르뉘 총리의 사직서를 수리하고도 나흘 만에 재기용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극우와 좌파 가리지 않고 르코르뉘 총리의 불신임을 예고한 야당은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도 촉구하고 있다.

"재정문제 시급해 복귀 결정했다"


11일 유로뉴스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파리 외곽의 라이레로즈 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취재진을 만나 “(총리) 후보자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재정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기에 복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날 마크롱 대통령의 재임용 요구를 수용한 이유를 밝힌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야권과 협상을 벌였던 39살의 젊은 총리 르코르뉘는 지난 6일 “각 정당이 자기들 공약 밀어붙이기에만 관심이 있다. 이런 구조하에서 제대로 된 정부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자진사퇴했다. 지난달 9일 ‘공휴일 이틀 폐지’를 내건 긴축 재정안으로 불신임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후임으로 임명된 지 불과 27일 만의 사퇴였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후임자 물색에 실패하자 결국 그의 재임용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이날 “저는 명확한 사명이 있다. 정치 세력이 저를 도와서 힘을 합치면 그 사명을 달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사명’은 프랑스의 만성적인 재정적자 해소로, 이를 위해 정치권에 협조를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새 예산안 제출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이틀 남짓이다. 이 기간에 재정과 예산, 사회보장 담당 장관들을 임명해야 하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상당수 정당은 "장관직을 제안해도 수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르면 오는 13일 의회에 르코르뉘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제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극우 국민연합(RN)의 대표인 마린 르펜이 “불신임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고, 사회당은 르코르뉘가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 조정하는 연금개혁 폐지와 부유세 도입을 하지 않을 경우 축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로이터는 “27일간 재임한 르코르뉘는 20세기 이후 프랑스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총리를 지냈지만 두 번째 임기가 이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고 내다봤다.

자진사퇴 총리 재임용한 마크롱 '고립'



올 7월 14일 마크롱 대통령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린 프랑스 혁명기념일 연례 군사 퍼레이드가 끝난 뒤 자리를 떠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올 7월 14일 마크롱 대통령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린 프랑스 혁명기념일 연례 군사 퍼레이드가 끝난 뒤 자리를 떠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자진사퇴한 총리를 재임용한 마크롱 대통령을 향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나쁜 농담”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마크롱이 임명한 르코르뉘 2기 정부는 민주주의의 수치”라고 일갈했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마누엘 봉파르 의원은 “프랑스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4년 마크롱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했던 가브리엘 아탈마저 “대통령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등을 돌렸다.

공법학 교수인 드니 바랑제와 올리비에 보는 10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기고한 글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완전히 고립됐고 국가를 전례 없는 제도적 교착 상태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베를린=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