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디바이스'로 불리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로봇의 몸체 격인 하드웨어(HW) 기술 발전이 무르익었고, '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이 로봇에 접목되면서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당초 상용화까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던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이뤄지면서 '휴머노이드 모멘트'(로봇 혁명)가 머지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작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5년 380억달러 규모까지 커지고 로봇 출하량이 140만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직전해 골드만삭스가 발표했던 전망치와 비교했을 때 시장 규모는 6배, 출하량은 4배 증가한 것이다. 그만큼 AI와 결합해 로봇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휴머노이드의 상용화 시기가 훨씬 앞당겨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동안 로봇 프로그래밍은 엔지니어(사람)가 로봇의 언어로 코딩해 명령을 입력하고 로봇의 피드백을 관찰해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피지컬AI'의 등장으로 판이 바뀌고 있다. 피지컬AI란 물리적 세계를 인식·이해하고 물리적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행동형 AI를 의미한다. 이처럼 '로봇 뇌'가 더 똑똑해질수록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테크업계에서는 AI에 집중하던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바이두 등이 로봇에 집중 투자하는 것을 두고 AI 모델을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에 적용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생성형 AI 생태계가 확장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디지털 공간 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어모델을 행동모델로 진화시켜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면, 자연어 명령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스마트폰이 그러했듯 휴머노이드는 하드웨어의 발전보다 기기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와 대량생산(제조)의 구현력이 맞물릴 때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로봇패권'을 둔 치열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방한해 매일경제와 만난 로봇 전문가 얀 리파르트 스탠퍼드대 교수(생명공학)는 한국이 '휴머노이드 모멘트'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머노이드 상용화가 멀었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향후 로봇 시장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테슬라, 화웨이처럼 대규모 제조 역량을 가진 기업들이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리파르트 교수는 AI와 생물학, 분산시스템 분야 전문가다. 그는 로봇을 통제하는 범용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회사인 오픈마인드를 창업했다. 로봇계의 '안드로이드'를 표방한 오픈마인드는 실리콘밸리에서 대규모 시드 투자를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리파르트 교수를 만나 휴머노이드 시장 전망과 한국의 잠재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간처럼 작동하는 휴머노이드 상용화는 갈 길이 멀다는 회의론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24시간 작동하는 '극단 스펙' 없이도 수백 가지 사례에서 이미 로봇은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로봇 하드웨어가 발전했고, AI의 발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특히 로봇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점에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휴머노이드 시장의 승자는 어떤 기업이 될까.
▷로봇 시장의 진짜 난제는 코어 기술보다 '수백만 대 규모의 제조'다. 따라서 휴머노이드 시장의 승자는 필연적으로 대량 제조 역량을 가진 기업이 될 공산이 크다. 배터리·센서·컴퓨팅·소프트웨어 등을 아울러 저가·대량으로 품질을 유지하며 생산해본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개발한 테슬라처럼 칩까지 자체 개발해 로봇 생태계를 완전히 통제하는 전략을 펼치는 기업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 역량을 갖춘 대기업들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인가. 소규모 로봇 스타트업들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현재 메타·엔비디아·오픈AI·애플 등 빅테크가 휴머노이드를 대거 구매해 실리콘밸리에선 (로봇) 물량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산업이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소형 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는 전략적으로 매우 영민했다. 구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스마트폰·자동차 같은 분야에서 '대량 제조·신뢰·사용성·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해본 기업이 유리하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LLM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로봇은 산업·의료·수출·국방 면에서 한국이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핵심 분야다. LLM 격차는 치명적이지 않다. 실제 현장에서는 10~20개 AI 모델의 조합으로 돌아가며 오픈소스(공개형) 모델도 늘고 있다. 로봇용 AI의 경우 관건은 모델 자체보다 '대량 제조'와 '소프트웨어'(운영체제) 역량이다.
―최근 AI와 로봇을 결합하는 피지컬AI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에도 기회가 있을까.
▷'대규모 제품 제조'가 다음 단계의 승부처라고 생각한다. LG·삼성·화웨이·현대같이 제조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유리하다. 한국의 기회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백~수천만 대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경험을 가진 기업들이다. 한국은 대규모 휴머노이드 생산의 스케일업 과정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드문 국가 중 하나다.
―한국 기업과 협력할 여지가 있나.
▷한국은 우수한 대학·인재 풀을 갖추고 있고 삼성·LG·현대차처럼 수십 년간 축적한 '제조 DNA'를 갖춘 글로벌 로봇 허브 후보지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번에 로봇 서밋(Open Robotics Summit)을 한국에서 열었다. 한국 내 공급망·실수요자·개발자와의 접점을 빠르게 넓히려는 의도였다. 특히 LG전자와는 휴머노이드 거버넌스·사이버보안 이슈를 함께 다루고 있다. 이번에 함께 진행하는 연구의 핵심은 로봇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할루시네이션(환각현상)'을 문맥 속에서 사전에 차단·완화하는 것이다.
―오픈마인드가 로봇용 분산 네트워크를 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때문에 투자업계에서는 로봇 분야의 이더리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로봇이 고도화하고 자율성이 커질수록 기계 간의 신원 증명, 신뢰, 거래, 경제·거버넌스 인프라스트럭처가 필요해진다. 예컨대 차량은 서로 위치·속도를 아는데도 충돌한다. 표준화된 조정 프로토콜이 없어 협조가 안 되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가 장을 보고 로보택시(웨이모)와 연동해 배송하려면 기계 간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가 개발한 것은 세계 로봇들이 서로 신원을 확인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분산형 네트워크다. 처음 만난 로봇끼리도 마치 사람이 명함을 주고받듯 서로를 인증하고,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게 해준다. 기계들이 어떻게 서로의 신원을 확인하고, 위치를 증명하며 지식을 공유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로봇들이 서로의 경험에서 학습하는 것도 가능하다.
―언젠가 휴머노이드가 '자아'를 갖게 되는 순간이 올까.
▷물론이다. 휴머노이드는 궁극적으로 자체 우선순위·기억·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다. 때로는 인간이 이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이 이해·참여·통제·거버넌스할 수 있도록 '좋은 방식'의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순민 기자 / 정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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