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키튼. AP/연합뉴스 |
화려한 뮤즈들로 가득한 할리우드에서 지적이고 모던한 이미지로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구축했던 다이앤 키튼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
뉴욕 타임스 등 미국 매체들은 11일(현지시각) 다이앤 키튼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사망 장소와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4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란 키튼은 성인이 될 무렵 뉴욕으로 옮겨 연기를 공부한 뒤 브로드웨이에서 연기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불과 서른한살의 나이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하면서 그의 연기인생에 전환점이 된 ‘애니 홀’의 감독 우디 앨런을 만난 것도 60년대 말 브로드웨이 무대에서였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다이앤 키튼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대부’ 시리즈였다. 1970년 로맨틱 코미디 ‘러버스 앤 아더 스트레인저스’로 스크린 데뷔한 키튼은 1972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의 아내가 되는 케이 아담스를 연기했다. 작품을 비롯해 그의 연기도 큰 찬사를 받았지만 다이앤 키튼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다. 그는 개봉 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내가 그 역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940년대의 옷차림을 한 내가 막대기처럼 느껴져 내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다이앤 키튼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애니 홀’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
그가 추구하는 캐릭터는 동시대의 현실적인 여성이었고, 시니컬하면서도 날카로운 유머를 장착한 우디 앨런과의 만남은 다이앤 키튼의 연기 인생을 바꿔 놓았다. 1977년작 영화 ‘애니 홀’에서 키튼은 야망과 불안을 숨기지 않는 뉴욕의 가수 지망생으로 출연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화려한 드레스 대신 리넨 재킷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양말에 하이힐을 신은 키튼의 수상 복장은 화제가 됐고, 이후에도 남성복에서 영감받은 키튼의 중성적인 옷차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여성들의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키튼은 이후 ‘맨해튼’(1979) 등 우디 앨런의 전성기 시절 작품을 함께 하며 배우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밖에도 워런 비티의 ‘레즈’(1981) , ‘마빈스 룸’(1996) 등 다양한 영화에 나와서 호평받았다. ‘신부의 아버지’(1991), ‘조강지처 클럽’(1996),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2003) 등 코미디 영화는 냉소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다이앤 키튼의 연기력이 가장 돋보이는 장르로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노년이 된 이후에도 ‘북클럽’(2018), ‘서머 캠프’(2024) 등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으며 특히 나이 든 여성들의 연대와 우정을 그린 작품에 주로 참여했다.
다이앤 키튼은 작가와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1987년 첫 연출작으로 다큐멘터리 ‘헤븐’을 내놓은 뒤 2000년까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으며 1995년 연출작 ‘내 마음의 수호천사’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기도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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