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시장]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금이 동시에 사상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주식과 금의 상승이 전혀 다른 투자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이상한 동반 랠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8일(현지시간) 각각 0.6%와 1.1% 오르며 또 다시 사상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날 12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도 4070.50달러로 마감하며 사상최고가를 경신했다.
금 선물가격과 S&P500지수 추이/그래픽=김현정 |
주식은 경제 성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오르고 금은 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배경으로 상승한다. 이 때문에 주식과 금의 동반 랠리는 극히 이례적이다.
실제로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1975년 이후 2024년 전까지만 해도 S&P500지수와 금값이 같은 날 사상최고가를 기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07년과 2020년에 S&P500지수와 금값이 비슷한 시기에 사상최고가 부근에서 거래된 적은 있지만 최근처럼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동반 상승세를 이어간 적은 없었다.
이에 대해 머니 메탈스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스테판 글리손은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최근의 금값 강세가 "탈달러화와 미국 국채에 대한 노출 축소"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며 이를 감안할 때 주식을 비롯한 자산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세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 금값이 온스당 4000달러를 넘어선 것은 "금과 연동되지 않는 법정화폐의 붕괴 가속화와 정부 재정의 불안정성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써 금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국 국채와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이 미국 국채에 대한 대체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금과 주식의 동반 강세가 이해된다는 설명이다.
삭소 은행의 상품 전략팀장인 올레 한센도 금값이 올들어 53% 급등한데 대해 "기존 금융 질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며 "투자자들은 수십년간 미국 국채를 무위험 자산으로 여겼지만 이제 시장은 미묘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더 이상 무위험과 신뢰도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채는 여전히 무위험 자산으로 여겨지지만 더 이상 투자자들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며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 하락의 결과로 자금이 금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조차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며 금 매입을 늘리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량은 올해 1000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U.S.은행 자산관리의 수석 투자전략 이사인 롭 하워스는 S&P500지수의 향후 랠리는 기업들의 이익 성장세에 달린 반면 금값 상승은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지속적인 금 매입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금이 미국 국채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면서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결국 금값 랠리는 기존 금융 질서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기 때문에 금과 주식의 이상한 동반 상승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배런스는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 질서를 신뢰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현재로서는 AI(인공지능)의 성장 잠재력을 낙관하면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봤다.
AI를 둘러싸고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지만 지금 시장의 가장 강력한 상승 모멘텀인 AI를 외면한 채 랠리에서 소외될 수는 없어 AI 추격 매수가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언제 터질지도 모를 AI 버블이나 선진국 부채 위기가 두려워 주식에서 손 놓고 있으면서 엄청난 수익 창출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기에 주가와 금값이 함께 상승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배런스는 AI는 자본주의의 강점인 혁신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반면 금은 달러 자본주의의 약점에 대비하려는 수요를 보여준다며 머지 않은 미래에 두 자산의 상승세 중 무엇이 진정으로 옳았는지 판가름 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위기가 닥치면 주식뿐만 아니라 금까지 위험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U.S.은행 자산관리의 하워스는 "유동성 경색이 발생하면 증시와 금 모두 큰 도전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렉스의 애널리스트인 에드 미어는 "증시가 조정을 받더라도 금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모든 자산시장을 덮치는 전반적인 급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시장 약세론자들의 문제는 시장에 어떤 부정적인 요인이 발생해도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는 점"이라며 "무엇이 급락을 초래할 결정적인 방아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식과 금 모두 상당한 과매수 상태이기 때문에 충격을 촉발할 요인이 나타나는 순간 동시에 상당한 수준의 조정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9일 개장 전에는 펩시코와 델타항공이 실적을 발표한다. 오전 8시30분(한국시간 오후 9시30분)에 예정된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업무 정지)이 길어지며 또 다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오전 8시30분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커뮤니티 뱅크 컨퍼런스에서 개막사를 한다. 미리 녹화된 동영상으로 5분간 짧게 진행되기 때문에 셧다운 상황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뭔가 현재 경제 여건에 대해 힌트를 얻을 만한 발언이 있을지 주목된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