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과정 조사보고서’ 내용
최상목 당시 경제수석 “10조 원에 맞추라”
원래 예산안에서 60% 삭감한 수치
최상목 당시 경제수석 “10조 원에 맞추라”
원래 예산안에서 60% 삭감한 수치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는 모습.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때는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사진=한주형 기자] |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과정에서 최상목 당시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R&D 예산 10조 원으로 삭감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예산안을 놓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최 수석은 “과학계는 카르텔이지만 기재부는 엘리트”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기정통부로부터 받은 ‘R&D 예산 삭감과정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실은 최 수석을 중심으로 R&D 예산 삭감에 강하게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보고서는 과기정통부의 ‘R&D 예산 삭감 과정 조사 TF’가 작성했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지난 9월 박인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단장으로 한 TF가 출범했다.
2024년도 R&D 예산 삭감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2023년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미 전년도보다 6000억 원 증액된 예산안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사전 검토를 마친 상황이었다.
이후부터는 최 수석이 R&D 예산을 삭감하는 데 앞장섰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주요 R&D 예산의 총 규모는 유지하되 일부 항목만을 변경한 예산안을 보고했다. 그러나 최 수석은 “R&D 예산을 10조 원으로 삭감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원래 예정된 총액인 25.5조 원에서 60%가량을 삭감하라는 주문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참석자는 TF 측에 “최 수석이 ‘과학계는 카르텔이지만 기재부는 엘리트라서 카르텔이 아니’라고 발언했다”고 증언했다. R&D 예산은 과학계가 아니라 기획재정부의 뜻대로 편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최 수석은 기획재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지낸 관료 출신이다.
이후 대통령실은 10조 원 규모의 R&D 예산안에서 사업을 일일이 따져가며 조금씩 늘리는 전략을 취했다. 대통령실 검토 끝에 17.4조 원의 주요 R&D 예산안이 나왔고, 이후 과기정통부가 필요성을 설득해 최종 주요 R&D 예산안은 21.5조 원이 됐다.
이에 지난 예산 삭감은 대통령실이 기재부와 과기정통부의 균형을 완전히 깬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는 “R&D 예산을 놓고 기재부와 과기정통부의 알력 다툼은 계속 반복됐다”며 “권한이 큰 기재부가 마음 먹으면 사실상 과기정통부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지금은 기재부가 R&D 예산 총액을 결정하고, 과기정통부가 각 부처와 기관들에 배분하는 형태다. 과기정통부가 사전검토를 통해 권고안을 내놓기는 하지만, 기재부가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 부처의 권한과 역할은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계속 지금 같은 권한을 갖고 있는 한, R&D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신설된 과학기술부총리 제도에 과학기술계가 기대를 갖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노종면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최상목 전 경제수석은 R&D 예산 삭감도 모자라 그 규모를 10조 원 수준으로 맞추려 했다”며 “이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봤고 어떤 이권이 개입됐는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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