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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투자 결실 ‘노벨상 2관왕’ 일본…“연구 환경 악화 중”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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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투자 결실 ‘노벨상 2관왕’ 일본…“연구 환경 악화 중”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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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8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과학자들이 올해도 잇따라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쾌거를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대거 노벨상을 수집하고 있는 일본이 역대 31번째 수상자(단체 1곳 포함)를 배출하면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일 일본 언론들은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교수가 리처드 롭슨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 명예교수, 오마르 야기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교수와 함께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하루 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화학물질이 흐를 수 있는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금속-유기 골격체‘(MOF)라는 새 분자 구조를 만들었다”며 “이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이산화탄소 포집이나 사막 물 부족을 해결할 공기 중 수분 채취, 환경 정화 등 인류가 맞이한 거대한 과제를 해결에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수상자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기타가와 교수는 수상 소감으로 "과학자에게 새로운 도전은 진정한 기쁨”이라며 “힘든 일도 많았지만 30년 넘게 즐겨왔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에는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미국 생명과학자인 매리 브런코, 프레드 램스델과 함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에선 이들을 포함해 역대 서른명의 노벨상 수상자(외국 국적 취득자 포함)를 배출했다. 일본은 특히 과학 분야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노벨수상자 가운데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9명, 생리의학상 6명에 이른다. 그외에 문학상 2명, 평화상은 1974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그리고 원폭 피해자들의 풀뿌리 모임인 ‘니혼 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지난해 받았다.



일본이 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유독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는 정부 차원의 장기적이면서 적극적인 투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고도성장기였던 1960∼70년대 기초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이뤄졌고, 30여년이 지난 2000년대 들어 노벨상 수상 등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일본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의 ‘노벨상 수상자의 경력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핵심 연구를 시작해 노벨상을 받는 데까지 평균 29년이 걸린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 일본에선 2000∼2002년 3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2년에는 화학상과 물리학상, 2008년에는 일본인 4명이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동시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자유롭고 창의적 발상을 할 기회를 보장해주는 환경과 분위기도 세계적 성과를 내는데 큰 구실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던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제작소 수석연구원은 엔에이치케이(NHK)에 “올해 노벨상을 받은 기타가와 선생님은 연구를 설명할 때 ‘쓸모없는 것의 쓸모’라는 장자의 말을 인용하신다고 들었는데 사고의 다양성이 훌륭한 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가치관이 연구 개발 현장에서 끼치는 영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생기면서 연구자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엔에이치케이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의학·이학·사회과학·인문과학 등 연구자 5944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의 과학 연구력 저하 우려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이 89%(강하게 동의 63%, 다소 동의 26%)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연구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69%에 이른 것을 비롯해 예산 문제 62%, 인재 부족 43% 등 구조적 문제를 지적(복수 응답 )한 이들이 많았다. 교육 예산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이 엔화 가치 하락과 물가상승 등이 겹치면서 교육예산이 줄고, 대학 인력이 축소되면서 강의·행정 처리 시간 증가로 연구 역량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시네하 류마 게이오대 교수는 방송에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서류 작업이나 업무가 늘어나 순수하게 연구할 시간을 내는 게 점점 어렵다”며 “현장 연구자들이 피폐해지고, 개혁이나 제도 운영에 큰 구멍이 난 상태”라고 꼬집었다.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우리 때는 연구에 몰두할 환경이 갖춰져 노벨상 수상 등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지금 젊은 연구자들은 연구에 전념할 수 없고 자유로운 발상과 도전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일본 과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그 영향이 일본 전체 기술이나 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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