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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아펙 ‘번개’ 이뤄질까?…러브레터 27통에 힌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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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아펙 ‘번개’ 이뤄질까?…러브레터 27통에 힌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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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싱가포르 공보부 누리집 갈무리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싱가포르 공보부 누리집 갈무리


“그가 내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썼다. 대단한 편지들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9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트럼프와 ‘러브레터’를 주고받은 ‘그’는 바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입니다. 앞서 전·현직 주미 특파원 모임인 한미클럽은 두 지도자가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나눈 27통의 친서 전문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최근 이 편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10월31일부터 이틀간 개최되는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친서가 오고 간 시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세 차례 만난 바 있습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특히 2019년 6월30일 판문점 ‘깜짝 회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북미 대화가 교착 국면에 빠진 가운데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잠깐 만나자”고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전격적으로 성사된 만남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북한은 비핵화 불가 입장을 재천명한 상태입니다. 다만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9월29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같이 밝히면서도 “북한을 존중하는 나라와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북미 대화의 여지는 남겨뒀습니다.



두 지도자의 ‘깜짝 회동’ 재현을 기대하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8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희망했습니다. “김정은과 저는 매우 좋은 관계를 가졌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말이죠.



그러자 김 위원장도 직접 9월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대’가 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6년 전 오고 간 27통의 친서는 두 지도자가 말하는 ‘좋은 관계’, ‘좋은 추억’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에만 해도 서로 “늙다리 미치광이”와 “미친놈”과 같은 거친 말을 주고받던 두 지도자가 ‘존경’, ‘영광’, ‘나의 친구’ 같은 표현을 써가며 서로 예를 갖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담판을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고 “대북 압박을 기조로 한 실무자들의 태도와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7월 공개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7월 공개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


첫 친서는 싱가포르에서의 첫 만남을 2개월가량 앞둔 2018년 4월1일 오갔습니다. 김 위원장은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부정적인 양자 관계를 끝내기 위해 큰 걸음을 내딛을 용의가 있다”“각하의 중대한 결심을 매우 고대한다”라고 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양국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협력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화답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북미 정상 사이의 유일한 문서 합의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나오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강력하고 걸출한 정치인’, ‘훌륭한 리더십, 정치적 감각, 결단력을 갖춘 강력한 정치 지도자’와 같은 표현을 써가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2018년 7월6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김 위원장의 친서를 볼까요. 김 위원장은 “각하와의 뜻깊은 첫 만남과 우리가 함께 서명한 공동성명은 참으로 유의미한 여정의 시작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조-미 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저와 대통령 각하의 강한 의지와 진지한 노력, 독특한 접근법은 분명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해 9월21일 보낸 친서에선 “각하에 대한 제 믿음과 존경은 절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018년 6월15일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에 방금 도착했는데, 북한과 위원장님에 대한 언론 보도들은 환상적이었다”“저는 우리가 얼마나 잘 어울렸고 서로 호감을 가졌는지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환담과 만찬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9년 2월2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환담과 만찬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9년 2월2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두 사람은 서로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1월8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당신의 생일이라고 들었는데, 행복한 하루이길 바랍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같은 해 6월10일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하의 생일을 맞아 진심 어린 따뜻한 안부를 전합니다. 영부인님과 나머지 가족분들, 그리고 당신의 국민들에게도 안부를 전하고자 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친서에는 특별한 선물이 동봉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7월2일 김 위원장에게 친서와 함께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에서 찍은 사진 22장을 보냈습니다. “이 사진들은 저에게도 훌륭한 추억이며, 위원장님과 제가 발전시켜 온 독특한 우정을 표상한다”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나의 친구”라고 표현하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고 약속(2019년 3월22일치 친서)하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2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산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2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산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미 관계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로 빠르게 얼어붙었습니다.



공개된 두 지도자 간 마지막 친서는 2019년 8월5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것인데요, 이를 두고 저명한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실망한 연인의 편지’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019년 2월2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019년 2월2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 편지에서 김 위원장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내준 사진에 대해 “그 사진들은 지금 제 집무실에 걸려 있다. 각하께 제 사의를 표하며,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면서도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저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 분명히, 저는 정말로 기분이 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때문에 실무급 대화를 가질 수 없다던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한국과의 군사 게임과 전쟁 연습이 끝났을 때 제게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편지 말미에 “각하와 이처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당신이 항상 건강하길 바라며, 더 큰 성취를 이룩하길 기원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침, 백악관은 9월30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긴 하지만 6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번개 만남’이 다시 한번 이뤄지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두 지도자의 ‘우정’이 한반도 평화의 열쇠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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