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단독] 겁에 질린 성범죄 피해자 ‘반년 뒤’ 지원… 검찰의 느긋한 ‘긴급지원’

한겨레
원문보기

[단독] 겁에 질린 성범죄 피해자 ‘반년 뒤’ 지원… 검찰의 느긋한 ‘긴급지원’

속보
법무장관 "서해 피격 사건, 정치적 수사…구체 사건 지휘 안 하는 게 원칙"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전경.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전경.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주거침입과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ㄱ씨는 지난해 6월 ‘이전(이사)비'를 광주 지역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신청했다. 보복 범죄 우려 탓에 하루라도 빨리 거처를 옮겨야 했지만, 신청을 받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이전비 지급 심의를 미루기만 했다. “재판 결과와 가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반영해 지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느긋한’ 이유였다. 결국 ㄱ씨는 급히 돈을 구해 이사부터 한 뒤, 지난해 12월에야 이전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검찰이 이사·치료·생계 지원이 시급한 범죄피해자들을 위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제도를 마련해 놓고도, 이를 제때 지원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까지 지원 심사에조차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아, ‘긴급지원’이라는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경찰청이 검찰에 연결한 피해자 지원 사례 237건(8개 주요 도시, 2024년 1월~2025년 7월)을 분석한 결과를 30일 보면, 이전 비용의 경우 경찰의 피해자 연결부터 지급까지 평균 62일이 걸렸다. 생계비는 53.2일, 치료비는 80.1일 뒤에야 지원이 이뤄졌다. 경찰이 수사 초기에 지원이 시급한 피해자로 보고 직접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조차 두달 이상을 기다린 셈이다.



검찰과 검찰청 내 비영리민간단체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범죄피해자지원기금과 자체 재원으로 피해자의 생계비, 치료비, 이전비 등으로 집행한다. 남편 등 가해자와 분리로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친밀관계 폭력 피해자, 보복 범죄 우려로 주거지 이동이 절박한 스토킹 피해자가 주로 신청한다. 법무부에 기금이 배정된 터라, 경찰은 검찰 쪽에 피해자를 연결하는 역할에 그친다.



경찰과 피해자 단체들은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는 지원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호소한다. 대개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범죄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언급한다고 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신변의 위험이 있는 피해자는 당장 이주해야 하는데, 검찰 송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지원이 너무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기까지는 통상 50여일이 걸린다.



번거로운 행정절차로 피해자 스스로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치료비·생계비 지원을 위해서는 피해자가 직접 검찰청사를 방문해야 하고, 한두달에 한번꼴인 심의위원회의 지급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3월 한 30대 준강간 피해자는 서울중앙지검 관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치료비·심리상담 지원을 요청했으나, ‘직접 방문’을 요구한 탓에 신청을 포기했다. 지난 7월에는 임신 중 폭행, 특수협박을 당한 피해자가 인천지검의 심사위 일정을 기다리다가 하혈 치료를 위한 치료비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 결과, 관계성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에도 치료비·생계비·이전비 집행액은 외려 줄어들고 있다. 2020년 치료비·생계비 집행액은 34억5천만원이었으나,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31억8천만원이었다. 이전비도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1억~2억원대로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경찰 쪽은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와 접촉하면서 치료비·생계비·이전비 지급을 전담해야 신속한 피해자 보호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소관 부처인 법무부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전비용의 경우 신청부터 지급까지 평균 9.17일이, 치료비와 생계비는 평균 29일이 소요되고 있다"며 "사건 초기단계부터 경찰 등 범죄피해자 지원 관계기관간 협업을 통해 피해자 연결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범죄피해자 통합지원시스템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혜정 소장은 “경찰이든 검찰이든, 기관 간 협업을 통해 사건 초기에 빠른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