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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매우 낮아"→"배제 못 한다"... 정부 'APEC 북미 서프라이즈' 기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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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매우 낮아"→"배제 못 한다"... 정부 'APEC 북미 서프라이즈' 기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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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대 "석유화학·철강 산업 구조개편 불가피"…대책 논의
김정은 연설 이후 북미대화 기대감 기류
북미, '뉴욕 물밑 접촉' 가능성에도 주목
'한국 배제' 모양새 예방 속내도 엿보여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악수하는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북한 대외용 매체 조선중앙통신이 당시 보도한 것이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악수하는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북한 대외용 매체 조선중앙통신이 당시 보도한 것이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다음 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북미 접촉 가능성에 대한 정부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당초 회의적 입장을 보였으나 APEC을 앞두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 태도를 드러내면서 경주에서의 '북미 간 서프라이즈' 여지를 열어두는 모습이다.

유엔(UN) 총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정부 고위관계자는 26일(현지시간) 현지 특파원들과 만나 APEC 정상회의를 기회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만남 가능성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같은 날 보도된 AP통신 인터뷰에서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평화 중재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가까운 시일 안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환상적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북미 접촉 기대에 확대해석을 경계해 온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조 장관은 지난달만 해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북미 접촉 가능성에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비슷한 시기에 "(북미·남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게 잡지 않는 게 오히려 건설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선경(가운데)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유엔총회 제80차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25일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선경(가운데)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유엔총회 제80차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25일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북한이 최근 내놓은 대미 메시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비핵화라는 핵심 의제를 배제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재회 의지가 있다는 점을 김 위원장이 직접 밝힌 것이다. 외교 당국 소식통은 28일 "북미협상 재개는 여전히 실체가 없는 수준"이라면서도 "경주 APEC을 앞두고 북한이 점차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총회에 김선경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했다. 북한이 유엔총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 것은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물밑 접촉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외교가의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의 기대감 표출에는 북미 협상 국면에 한국이 배제되는 모양새를 예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로선 북미대화가 남북대화로 이어지긴 어려운 형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북미대화 흐름에 한국이 비껴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남측에는 여전히 대화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정부로선 북미대화에 대한 관심 표명과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식으로라도 대북 문제에 대한 관여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