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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美가 보내온 MOU 문서, 7∙31 관세합의 때와 크게 달라"

중앙일보 윤성민.오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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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美가 보내온 MOU 문서, 7∙31 관세합의 때와 크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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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면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면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뉴욕에서 관세 협상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3500억 달러(약 490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와 관련해 한국은 한·미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선결조건으로 제시하며 “국익 우선” 원칙을 강조한 반면 미국은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며 평행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뉴욕에 있는 한국 유엔대표부에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을 접견해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세 협상)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며 “한국과 일본은 경제 규모, 외환시장 구조, 통화 체계 등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했다.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일방적으로 수용해 협상을 매듭지은 일본처럼 협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베센트 장관은 “관련 부처와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냉담한 상황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세계 4위이 경제대국이고 기축통화국”이라며 “한국에게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했다.

접견 이후 뉴욕 현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진행한 김용범 실장은 “한국 측이 제기한 외환 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 주제는 재무장관 담당 영역”이라며 “베센트 장관이 이번 면담을 통해 한국 외환 시장의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잘 숙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투자를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라며 “그 문제(통화스와프)가 해결된다고 당연히 미국이 요구하는 에쿼티(equity·직접 지분 투자) 형태로 3500억 달러까지 (투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협상 시한 때문에 우리가 원칙(국익)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건 한국이 미국에 요구하는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이다. 통화스와프는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와 맞바꿀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는 지난달 말 한국 외화보유액(4163억 달러)의 84%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 입장에서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보일 경우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어 통화스와프는 대규모 대미 직접 투자의 선결조건으로 여겨진다. 안전판을 미리 확보한 뒤에야 투자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해 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경험도 있다. 게다가 이번에 5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미 22일(한국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가 없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이 대통령과 함께 방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베선트 장관을 만나 통화스와프 문제를 논의했고, 앞서 미국을 찾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베센트 장관과의 면담에서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25일(한국시간) 공개된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협정이 없으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 조지아주 구금 사태와 관련해 “(대미 투자) 프로젝트가 완전히 중단되거나 공식적으로 보류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는 많은 인력이 미국에 신규 입국하거나 재입국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며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 총리는 “(한국인 근로자의) 안전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와 가족들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미국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했다.

지난 7월 31일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 타결을 선언할 때와 달라진 미국의 요구도 또다른 뇌관으로 떠올랐다. 김 실장은 미국이 요구하는 직접 투자 방식은 당초 합의 내용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 실장은 3500억 달러 투자 펀드가 대부분의 대출과 보증으로 이뤄져 있고, 일부가 직접 투자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2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도 “그런 내용을 우리가 비망록이라고 말했던 초기 언더스탠딩(합의)에 적어놨다”고 했다. 대출과 보증은 한국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투자 방식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후 직접 투자를 요구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김 실장은 대미 투자의 필요조건으로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구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7월 31일) 이후 미국이 양해각서(MOU)라고 보낸 문서에 판이한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투자 방식과 관련) 캐시플로(Cash flow·현금 흐름)라는 말을 썼는데, (미국이)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상당히 에쿼티에 가깝게 주장하고 있었다”며 “그렇다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이 눈에 들어왔고, 이를 지금 미국에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3500억 달러 직접 투자는) 수출입은행의 지금 현행 규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수출입은행법을 고치거나 정부의 보증동의안이 필요하다고 하면 국회에 보증동의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미국이 수용하더라도 국내 법률 개정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뜻으로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아 법 개정을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통화스와프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라고 김 실장은 언급한 것이다.

한·미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김 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관세 협상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실장은 “중요한 계기가 경주 APEC”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고, 양국 정상 간 당연히 면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상팀에선 그러한 국제행사가 중요한 계기”라며 “그것도 염두에 두면서 협상하고 있다”고 했다.

윤성민 기자, 뉴욕=오현석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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