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디시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빅터 차 한국 석좌가 9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
미국 워싱턴디시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대화의 방향을 튼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굉장히 영리한(smart) 움직임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차 석좌는 지난 9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피하고, 대신 북한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틀었는데 굉장히 스마트한 움직임이었다”며 “(이 대통령은) 그때 ‘피스메이커’를 이야기하며 우크라이나, 가자, 타이에 평화를 가져왔으니 한반도에도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해달라고 방향을 틀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할 이야기였다”고 밝혔다.
또 “두번째로 부동산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공감하는 주제”라며 “그런 식으로 (대화의) 방향을 틀어 나머지 기자회견에서 북한 이야기만 하며,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2025년 말까지 대화해 보겠다는 식으로 얘기가 흘러갔다”고 분석했다.
이번 미국 싱크탱크와 한국 기자들의 만남은 한국 언론재단과 미국 동서재단이 주최한 한-미 기자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달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도 평화를 만들어달라”며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도 만나달라” “북한에 트럼프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도 칠 수 있게 해주시고 세계사적인 ‘피스메이커’ 역할을 꼭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김여정(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특별한 관계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이기도 했다.
차 석좌는 “모두가 주목하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는 공개적 사인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이 대통령의 의도였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 입장에서 전반적으로 굉장히 성공적인 방문”이라고 평가했다.
앤드류 여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
앤드류 여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정상회담 전 미국이 관세 협상 외에 한국에 방위분담금을 높이도록 밀어붙이거나,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추측과는 다르게 흘러갔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관세와 관련해 비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을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미 정상회담이 한국 입장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반미’가 아니라고 미국 조야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도 짚었다. “사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1년 반 정도를 싱크탱크를 방문해 민주당은 반미가 아니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쌓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의 의견이 반영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했는데, 이번 양자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정권이) 반미가 아님을 잘 설득해 내는 데 성공했다.”
여 선임연구원은 “앨브리지 콜비 국방 차관이 주도하는 국가방위전략에서 중국 견제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의 대중 전략에는 큰 변화다. 한국으로선 일단은 좋은 소식”이라며 “세계가 워낙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트럼프 개인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도 있어 한국은 급변하는 정책 변화에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김정은 간 북미 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근래 북한이 두드러진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비핵화 이야기는 나오기 어렵다고 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인 김정은이 굳이 미국을 만날 동기가 없어 (만남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하지만, 최근 외교적으로 북한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푸틴과 시진핑도 (열병식에서) 만났다.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보라고 했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나도 잃을 게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북미 회담을 하더라도 비핵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만남이라면 김정은 입장에서도 국제적인 정상들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인데, 비핵화나 핵무기 관련 협상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빅터 차 석좌도 “굳이 김정은 입장에서 트럼프를 만날 이유는 없다”면서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트럼프는 김정은을 보고 싶어 할 것 같다. 러시아의 영향력을 낮추려는 것도 있지만, 트럼프 자신이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떠나 베이징에서 김정은을 만나거나 판문점에서 만난다거나 하여 미디어의 관심을 받고 싶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만남에) 관심이 없었다면,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북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안보석좌.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
한국 경주에서 열릴 아펙이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대중 외교 방향을 드러내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아펙에서 만나는 것은 외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고, 향후 몇년간 미-중 관계의 틀을 잡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국방 전략이나 전략성 유연성, 핵 확장 억지 등과 관련해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에서 조금씩 다른 메시지가 섞여 (한국 등이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아펙 정상회의 정상들 간의 만남을 통해 좀 더 분명한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 전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31일~11월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펙 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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