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정부조직법 일부개정안 의결을 앞두고 퇴장한 가운데 신정훈 위원장이 개정안 통과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현웅 | 경제산업부장
더불어민주당이 예고대로 25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이면, 나라살림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18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법안에 따라 기재부는 내년 1월2일자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되고,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으로 직무를 나눠, 금융정책은 재경부로 이관하고, 감독정책은 소규모 금융감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뒤 직접 맡게 된다. 금융감독원 역시 둘로 나눠 금융기관의 영업행위 규제는 신설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원에 맡긴다.
이재명 정부의 ‘기재부 쪼개기’는 일찌감치 예상됐던 일이다. 예산편성권을 틀어쥐고 민주당 정권 확장재정 기조에 번번이 맞섰던 기재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그 배경이다. ‘공룡 부처’ ‘상왕 노릇’ ‘기재부의 나라’ 같은 말들이 그간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개편 추진 과정에 적잖은 혼란이 예상된다. 정책 기능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률 등 후속 입법이 뒤따라야 하는데,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행정안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와 달리 정무위원장과 기획재정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맡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반대 뜻을 명확히 하고 있어, 후속 입법에 속도가 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후속 입법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는 방법뿐인데, 180일간 상임위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조직법 시행일과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부조직법에는 경제·금융정책의 주체로 재경부와 금융감독위 등이 명시되지만, 실제로는 금감위 등의 설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미청산 기관’들이 실무를 대신하는 기간이 적어도 수개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 훈령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임시변통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이 기간 시행되는 각종 정책 등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임을 받지 못했다는 법적 정당성 시비를 면하기 어렵다.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금소보원 설치가 마무리되더라도 ‘옥상옥상옥상옥’ 구조에서 권한 조정 등 디테일을 두고 기관 간 다툼이 일 경우 혼선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개별 법안과 시행령마다 권한의 주체를 누구로 정하는지에 따라 기관 위상이 달라질 수 있어 기관 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실무상으로도 폼 나는 일은 경쟁하고, 힘든 일은 미루는 조직 이기주의가 작동하게 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이번 조직개편에서 재경부라는 또 다른 ‘공룡 부처’ 탄생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산 기능만 기획예산처로 떼어낸 재경부엔 국내·국제 금융, 세제, 경제정책 협의 및 조정 기능이 몰리게 된다. “관은 치(다스림)하기 위해 존재한다”던 모피아의 완벽한 부활이다. 더구나 재정은 성장 둔화에 따른 세수 기반의 약화, 급격한 고령화와 복지지출 증대 등과 연동해 정책 수단으로서의 활용도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금융이라는 정책 수단은 날로 규모가 커지고 방식도 고도화하고 있다. 과도한 관치 금융으로 자원 배분 효율성이 왜곡되고, 금융권 부실을 키웠던 아픈 경험이 데자뷔처럼 아른거린다.
재경부는 여기에 더해 공공기관 지정과 통제·감독 기능까지 손에 쥐었다. 공공기관의 거대한 자금·조직 역시 손발로 부릴 수 있게 된 셈인데, 이는 재경부 출신 공무원 개개인에게는 퇴직 뒤 안착할 수 있는 따뜻한 낙하산 착륙지가 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개편을 두고 옛 재무부 라인의 완벽한 승리라는 뒷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이유다.
국정 운용 기조에 맞춰 정부 형태를 바꾸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계부채와 정부부채가 함께 치솟는 시스템 리스크와 부동산 피에프(PF) 저축은행 부실이라는 잠복한 금융 리스크,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실물경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초래한 통상 불확실성까지. 한국 경제가 걷고 있는 살얼음판을 돌아보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이번 조직개편은 민생지원금·지역화폐 같은 쟁점 사업을 수월하게 추진하기 위해, 정부의 리스크 대응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를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인가?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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