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매경춘추] 축구로 배우는 세상

매일경제
원문보기

[매경춘추] 축구로 배우는 세상

서울맑음 / -3.9 °
누군가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나는 늘 아르센 벵거라 답한다. 전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아스널의 감독, 내게는 축구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그는 젊고 빠르고 영리한 선수들을 모아 우아하고 날카로운 축구를 선보였다. 아울러 당시 몸값이 싸던 아프리카계 해외 선수들을 영입하고, 식단을 개선하는 등 경기 외적으로도 선진적 조직 운영을 했다.

그는 역사에 남되 서서히 뒤처졌다. 그의 그라운드 안팎 전략은 모두 훌륭히 재해석돼 다른 팀들에 의해 더 잘 활용됐다. 그는 축구를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했으나 한계도 확실했다. 벵거의 위대함과 별개로 벵거 감독 말년 아스널의 성적은 점점 하락했다. 그 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 중 하나인 메수트 외질이 있었다. 그의 장기는 패스였다. 정확한 타이밍, 정확한 세기, 정확한 경로. 거기엔 대가의 붓질처럼 선(禪)적인 요소마저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패스를 지금도 좋아한다.

외질의 한계도 명확했다. 그는 몸싸움에 약하고 수비를 싫어했다. 외질이 최고의 기량을 내려면 그가 패스를 하는 동안 그를 지켜줄 선수가 필요했다. 현대 축구는 골키퍼가 패스플레이에 참여할 정도로 골키퍼의 일인다역이 중요해졌기에, 외질의 치명적인 재능 하나만으로는 현대 축구의 강력한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 외질은 최고 수준의 경쟁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세계적 축구 전술은 크게 둘로 나뉜다. 공을 계속 갖거나, 치명적일 때 공을 뺏거나.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과 리오넬 메시가 있던 2010년대의 FC 바르셀로나가 점유율 축구의 절정이었다. 이들의 전성기 플레이는 고급 자동차 엔진의 회전처럼 정교했다. '저런 팀을 어떻게 이기나' 싶은 무력감까지 들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이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이 전술을 부쉈다. 점유율은 무시한 채 파괴적인 압박과 역습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다. 축구는 이런 도전과 응전 속에서 심오해졌다. 전술은 상향 평준화돼 이제 K리그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전술 감상이 가능하다. 발전의 한 축은 역시 돈이다. '실시간으로 사람의 관심을 모은다'는 면에서 스포츠는 21세기 궁극의 콘텐츠가 되고 있는 중이다. 축구는 그중에서도 가장 저변이 넓으며, 저변이 넓으면 언제나 돈이 모인다. 그 결과 영국인들은 말 그대로 자기 동네 축구팀이 모르는 나라의 떼부자에게 인수돼 급등락을 거듭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세계화가 내 앞마당까지 차오른 예시라 본다.

내게는 이 모든 게 21세기의 대서사시다. 영원한 강팀도 영원히 통하는 전술도 없다. 제국은 반드시 몰락한다. 그사이에서 변두리의 누군가가 반드시 기회를 낚아챈다. 의학이 발달하고 개인의 힘이 세지는 세상답게 천재 선수들은 점점 선수 수명이 길어지며 영생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지만, 멀티태스킹 압박도 더 심해진다. 요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처럼. 그사이로 해외 자본이 쏟아져 들어온다. 세상은 아름다워지지만 내 주변은 더욱 팍팍해진다.

현대 사회의 여러 현상을 축구에 비춰 설명할 수 있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 요소요소를 살피며 감탄할 뿐이다. 거대 플랫폼 구독료를 지불해 가며. 구독료 역시 오늘날의 필수품 비용이다.

[박찬용 에디터·칼럼니스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