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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풍랑 속 '슬픈 전설'을 소환하다...천경자 10주기 기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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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풍랑 속 '슬픈 전설'을 소환하다...천경자 10주기 기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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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10주기, 서울미술관서 24일 개막
1940~1990년 작 80여점 전시
진위 논란 '미인도'는 전시 안 해
"나의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일반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

생전 채색화 57점과 드로잉 39점을 비롯해 붓, 물감 등의 화구를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자신의 저작권과 작품을 사회에 환원한 전례를 남긴 천경자 작가(1924∼2015)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가 마련됐다. 2006년 천 작가가 생의 마지막으로 갤러리현대에서 개최한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이후 20년 만에 열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다.
24일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전시 내부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24일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전시 내부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서울미술관은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를 24일부터 내년 1월15일까지 서울 부암동 본관 M1 제1전시실에서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갤러리현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18개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 및 문학관 등에 흩어진 천 작가의 작품 80여점을 모았다. 전시작은 1940~1990년대 작품과 저서, 성장 과정과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위주로 구성했으며, 전시명은 자서전 제목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서 따 왔다.

전시작에는 천 작가가 베트남 전쟁 파병 종군 화가 10명 중 유일한 여성으로 참가해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20여 일간 머물며 그린 그림도 포함됐다. 담채화 속에는 총을 든 맹호부대 병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살육 현장을 꽃과 대비해 표현한 '꽃과 병사와 포성'은 국방부 협조를 얻어 개막 이틀 뒤인 오는 26일부터 공개된다.

해외에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들도 전시된다. 천 작가는 25년간 13차례에 걸쳐 해외에 장기체류했는데,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태국 등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린 풍경과 인물이 대거 공개된다.
24일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전시 내부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24일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전시 내부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경매시장서 고가 낙찰돼 화제가 된 작품 채색화 '초원Ⅱ'(1978)도 관람객을 맞는다. 해당 작품은 2018년 국내 경매시장에서 20억원에 낙찰돼 주목받았다. 1974년 아프리카 여행을 모티프로 삼아, 대자연 속 사자와 얼룩말, 물소, 코끼리 사이에서 벌거벗은 여인을 형상화했다.

여성 인물화도 대거 공개됐는데, 그의 여성 인물화는 현실적인 삶에 밀착한 넘치는 생동감이 특징이다. 자전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를 주인공 삼아, 그들의 삶에 깃든 고독과 한,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천 작가는 맛깔난 수필과 책 표지 그림으로 출판업계에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대 인기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가 건넨 그림은 다양한 책의 표지를 장식했다. 푸른빛의 인물과 노란 나비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여인'은 1969년 6월 '현대문학' 15권6호의 표지에 실렸다. 또한, 그의 그림으로 장식된 80여종의 잡지, 단행본 등을 살펴볼 수 있다.
24일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전시 내부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24일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전시 내부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전시관은 7개의 주제관과 1개의 추모 공간으로 이뤄졌으며, 모든 공간은 천 작가와 인연이 있거나, 해당 공간을 대표할 인사의 글로 채워졌다. 오세훈 서울시장,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등의 글이 감동을 자아낸다.

서울미술관은 "'위작 논란'이나 '미인도 사건'이 천경자 작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되길 원치 않는다"며 "근대사의 큰 풍랑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해 낸 한 명의 위대한 예술인으로 추앙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천 작가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술관 측과의 진위 공방은 최 작가 사후까지 이어졌고, 검찰은 해당 작품이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후 천 작가의 딸은 검찰이 허위 주장을 펼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근 최종 패소했다. 다만 이는 검찰의 수사가 위법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판결일뿐, 작품 진위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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