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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홈플러스 경영보다 땅장사… MBK가 4년 전부터 짠 폐점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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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홈플러스 경영보다 땅장사… MBK가 4년 전부터 짠 폐점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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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의 홈플러스 '먹튀 경영] <중> 실행
MBK파트너스 '대외비' 내부 문건 입수·분석
사업성으로 '정리 대상' 12개 점포 A·B·C 분류
"코로나로 폐점"이라더니...2019년 사업성 검토
올해 폐점 발표 7개 점포 4년 전 분양가 책정


전국 1호점이었던 홈플러스 대구점의 철거가 중단돼 휑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류수현 기자

전국 1호점이었던 홈플러스 대구점의 철거가 중단돼 휑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류수현 기자


"기존 할인점(홈플러스 대구점)에 해당하는 면적을 적정 규모의 오피스텔과 근린생활 시설로 대체할 경우 사업이익 1,258억 원, 사업이익률 36.6%가 예상된다."(2019년 6월 MBK파트너스 대외비 문서)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재개발 사업성이 높은 홈플러스 역세권 점포를 폐점하고 부지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인수 대금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홈플러스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유통 불황 등을 폐점 이유로 내세웠으나, 그 이전부터 세부 사업성을 검토하거나 부동산 개발업체와 논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홈플러스 1호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MBK가 홈플러스 인수 당시부터 사업성 개선보다 부동산 개발이라는 수익 장사에 초점을 맞췄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근 홈플러스 측이 폐점을 예고했던 15개 점포 중 절반 가까이가 이미 4년 전 분양가 책정이 완료됐었던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15일 본보가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9년 MBK 내부 문건에 따르면, MBK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 이후 3년간 부동산 유동화를 통해 인수에 사용한 대출금 4조4,270억 원 중 절반에 가까운 2조96억 원(47%)을 상환했다.

구체적으로 점포·물류센터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 4,850억 원, '세일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1조2,260억 원, 리스 보증금 유동화 3,850억 원 등이다. 인수 당시 세웠던 계획대로 홈플러스가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팔아 인수 대금을 갚는 차입인수가 현실화된 것이다.

매각한 부지서 개발이익 수천억 발생하자... "직접 개발" 나섰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픽=이지원 기자


개발 사업성·실적을 토대로 단순 매각이 아닌 MBK가 직접 점포 부지 재개발을 추진한 정황도 포착됐다. 2018년 부천중동점 부지를 홈플러스로부터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체가 지상 49층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3,000억 원대의 개발이익을 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MBK는 이를 두고 "토지 매각가는 950억 원, 공사금액은 1,460억 원 소요됐으며 분양금액은 6,300억 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보여 대규모 개발이익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당시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로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역세권 점포를 폐점하고 직접 오피스텔을 짓는 것이 '돈'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MBK는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수립해 사업성과 실적에 따라 '정리대상' 12개 점포를 선별하기도 했다. 이들 매장의 총장부가만 1조 원대에 달했다.

MBK는 토지용도 등을 분석해 공동주택, 오피스텔, 호텔 개발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매각 대상 점포를 A·B·C로 분류했다. A그룹은 '개발가능 용도이며 주변 여건도 있어 개발 가능성 있음', B그룹은 '개발 가능 용도지만 주변 여건이 좋지 않아 매각 곤란', C그룹은 '개발 가능하고 여건도 좋지만 건물 규모 제한·임차로 매각 곤란'인 곳들이었다. MBK는 "기존 점포 중 일부는 주거용, 사무용 시설로 재개발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현재 시행사, 건설사와 점포 재개발 가능성을 타진 중으로 8개 점포는 단기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적시했다.

2021년 12월 23일 폐업을 하루 앞둔 홈플러스 대구점 지하 1층 식품관이 텅 비어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21년 12월 23일 폐업을 하루 앞둔 홈플러스 대구점 지하 1층 식품관이 텅 비어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홈플러스 1호점'인 대구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점포를 철거하고 아파트·오피스텔 450세대를 포함한 근린생활시설로 탈바꿈해 1,258억 원 규모의 개발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MBK는 "A점포(대구점)에 대한 세부사업성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개발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전략적 개발 파트너 선정 및 개발 프로세스에 직간접으로 개입할 예정"이라고 적었다.


이는 1년 뒤인 2020년 6월 대구점 매각설이 돌자 "오프라인 매출 감소와 코로나19 불황 등을 이유로 매각을 검토하는 초기 단계로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던 홈플러스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노조의 반발에도 대구점은 2021년 결국 폐점·매각됐으나 개발 과정에서 사업성 악화로 공사가 중단되며 도심 속 흉물로 전락했다. MBK가 무리한 부동산 개발 추진 등 잘못된 사업적 판단으로 홈플러스 파산(기업회생절차)을 앞당겼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세일 앤드 리스백'도 폐점 위한 사전 작업 정황... 4년 전 예상분양가 책정



홈플러스 노조 대전세종충청지역본부가 12일 고용노동부 청주고용노동지청 앞에서 홈플러스 동청주점 폐점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홈플러스 노조 대전세종충청지역본부가 12일 고용노동부 청주고용노동지청 앞에서 홈플러스 동청주점 폐점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홈플러스가 인수자금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세일 앤드 리스백'도 사실상 폐점을 위한 전초 작업 성격이 짙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홈플러스가 올해 연내 폐점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15개 점포 중 7곳은 2020년 이미 예상분양가까지 책정이 마무리되는 등 4년 전부터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세워졌던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국내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엠디엠플러스는 홈플러스 10개 점포 부지를 사들여 홈플러스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임대수익 펀드를 운영했다. 2036년까지 홈플러스와 임대차계약이 돼 있는 곳들이라, 홈플러스 경영진이 폐점을 결정하지 않으면 개발이 불가능한 곳들이다. 하지만 펀드 측은 2021년 1월 국내 대형 종합건축사무소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들은 인근 아파트·오피스텔 분양가, 교통 등 입지 경쟁력, 공사 인허가, 예상 공사기간, 민원 발생 가능성 등까지 세부적으로 분석해 10곳 중 7곳을 '폐점 즉시 개발 추진 가능 물건'으로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픽=이지원 기자


건축사무소와 감평사가 작성한 '인허가·공사리스크 검토보고서'와 '사업성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가양점의 경우 예상 공사기간은 30.3개월, 책정한 오피스텔 평당 평균 분양가는 4,054만 원이었다. 서울 시흥점은 지상 17층짜리 아파트와 근린생활시설로 개발계획을 수립해 주변 시세보다 높은 평당 분양가 4,000만 원을 매겼다. 인근에 지하철 1호선과 대형마트, 학군 등이 잘 조성돼 있다는 이유였다.

대구 동촌점은 인근 대구공항 개발이 예정돼 있어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했으며, 도심지인 만큼 착공 전 주변 민원 대응 전략을 미리 세울 것을 추천했다. 이 외에도 인천 계산점, 경기 일산점, 경기 원천점, 안산 고산점 등도 연면적과 용적률 등을 고려해 인근과 비슷하거나 높은 분양가에 아파트, 오피스텔, 근린생활시설 등으로의 개발 계획이 수립됐다.

김승원 의원은 "MBK는 홈플러스 인수 초기부터 경영 정상화가 아닌 부동산 개발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것"이라며 "결국 이들의 과도한 이익 추구가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홈플러스 1호점'을 도심 속 흉물로 전락시킨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