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 한화오션 제공 |
미국이 일본 사례를 들어 한국에 3500억달러(약 486조원)의 대미 투자펀드에서 직접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데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소환할 정도로 정부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으로 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만간 방미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이런 한국 쪽 상황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과 전략투자펀드 양해각서를 체결한 일본은 외환보유액(1조3240억달러)의 41% 수준인 5500억달러(약 767조원)를 3년간 전액 현금으로 조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대규모 외화 유출이 따르는 결정이지만,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상설) 통화 스와프라는 ‘안전 장치’가 있다. 이는 필요하다면 일본이 미국에서 달러를 무제한 빌려와 국내 금융기관에 공급할 수 있다는 뜻으로, 달러 유동성 문제가 생길 때 완충 장치가 된다. 미국은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기축통화국인 일본·영국 등 5개국과만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반면,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는 한국 외환보유액(4200억달러)의 83%에 이른다. 단기간에 달러가 빠져나갈 경우 환율이 불안해지고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한-미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현금을 대거 인출해 3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IMF)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이유다. 일본과 비슷한 조건의 투자를 원한다면, 한국에도 보험 성격의 ‘통화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미국이 비기축통화국인 한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미국이 한국의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해 다른 카드를 내놓을 공산이 있다. 한국 정부는 애초 구상한 대로 한-미 조선 협력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구체적인 사업 이행 과정에서 실제 필요할 금액을 그때그때 투자하는 방식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과제다.
오는 2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한국 경제설명회 투자 서밋’ 일정 참석차 조만간 방미할 구 부총리가 베선트 재무장관을 면담해 한국 상황 등을 설명하고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22일 “베선트 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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