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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美 요구 수용 땐 금융위기”, 왜?…"외환보유고 바닥"

중앙일보 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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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美 요구 수용 땐 금융위기”, 왜?…"외환보유고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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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22일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다.

지난 19일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로이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은 22일 공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로이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은 22일 공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지난 7월 한ㆍ미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487조원)를 투자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그동안 투자 방식을 두고 이견이 커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었는데, 이 대통령이 직접 ‘한국 경제 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공개 압박에 나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협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국내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한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 방식은 일본의 ‘백지수표’ 방식이다.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767조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3년 4개월 동안 투자가 이뤄지는데, 세계 경제 규모 4위인 일본 국내에서도 버겁다는 우려가 크다. 당초 한국 협상팀은 지분 투자를 5% 수준으로 하고, 나머지는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 형태를 제안했다.

“일본식 ‘백지수표’ 모델이 현실화되면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가치 하락)은 물론, 국내 외화자금의 급격한 유출로 금융ㆍ외환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나게 될 것”(iM증권 박상현 전문위원)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3.7%, 전체 예산액 대비 31.2% 규모다. 한국의 투자액은 명목 GDP의 18.7%, 전체 예산액 대비 69.4%에 달한다. 외환보유액은 8월 말 기준 4163억 달러인데,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집행한다면 전체의 84%가 빠져나간다. 반면 일본의 투자액은 외환보유액 대비 42% 수준인 데다, 이미 미국과 통화 스와프(통화 맞교환 계약)가 체결돼있다. 한국은 안전장치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는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앞서 지난 9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1년에 (외환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은 200억~300억 달러를 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3500억 달러는)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는 수준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외환보유고의 도입 목적(환율 안정, 대외 신뢰 등)과도 맞지 않다”고 짚었다.


또 국채를 발행해서 조달한다고 해도 막대한 재정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커지는데,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국채 금리가 올라 정부의 이자 부담도 대폭 커지게 된다. 정부가 국회 동의를 얻어 ‘특별회계’ 예산 편성할 수도 있지만, 한 해 예산의 70%에 달하는 금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한은에 따르면 한국 금융·외환시장은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따라 환율·금리가 변동하는 정도인 ‘심도(depth)’가 일본ㆍ독일 등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있는 주요 17개국 중 최하위권(16위)으로 나타났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달러가 부족해서였다면, 현재는 위기 요인으로 시장의 심리가 중요하다. 환율 불안 등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

박유미 기자 park.yu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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