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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연애 금지’ 조항, 왜?…돌직구 질문 던지는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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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연애 금지’ 조항, 왜?…돌직구 질문 던지는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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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돌의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다룬 영화 ‘연애재판’.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일본 아이돌의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다룬 영화 ‘연애재판’.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팬들에게는 마음속 연인인 아이돌 그룹 멤버의 연애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본 아이돌 그룹 계약서에는 ‘연애 금지’ 조항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인권침해 요소 때문에 공식적으론 없지만 암묵적 조항에 가깝다. 지난해 에스파의 카리나가 연애 사실을 인정했다 팬들의 분노에 사과한 게 그 예다. 일본 영화 뉴웨이브를 이끄는 감독 중 하나인 후카다 고지는 이 논쟁적인 조항을 영화 ‘연애재판’으로 만들어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다. 후카다 감독과 실제 인기 아이돌 출신 주연배우 사이토 교코를 지난 18일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에서 만났다.



“2015년 한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연애 금지 조항을 어겨 소속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일본 아이돌 문화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로 소송까지 간다는 게 놀라웠죠. 이건 착취가 아닐까 질문이 떠오르면서 보편적 이야기로 풀 수 있겠다 싶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8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네요.”



8년이나 걸린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실제 아이돌 출신을 주인공 ‘마이’로 기용하고 싶었지만, 소속사들이 다 오디션을 거절해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사이토가 아이돌 그룹 ‘히나타자카46’을 나와 도호예능으로 소속사를 옮긴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도호예능은 배우를 많이 키우는 곳이라 이 친구가 배우를 하겠구나 싶어 무릎을 쳤어요. 사진을 보니 영락없는 마이 느낌이었죠. 이후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죠.” 실제로 사이토는 올해만 드라마 3편과 ‘연애재판’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일본에서 몸값이 가장 빠르게 올라가는 배우 중 하나다.



아이돌 그룹의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다룬 신작 ‘연애재판’의 주연배우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아이돌 스타 출신의 사이토 교코. 백종헌 씨네21 기자 legend@cine21.com

아이돌 그룹의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다룬 신작 ‘연애재판’의 주연배우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아이돌 스타 출신의 사이토 교코. 백종헌 씨네21 기자 legend@cine21.com


영화 속 마이는 팬들에게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는 아이돌답지 않게 조용한 성격이다. 실제 사이토 역시 “아이돌 그룹 활동할 때도 내 팬들은 아이돌 같지 않은 내 성격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배우로 데뷔하자마자 칸과 부산의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너무 꿈같아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며 “노래와 춤을 좋아해 아이돌이 됐지만 댓글을 보고 상처 입는 장면이나, 아이돌로 성공하고 싶지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싶다는 인생관이 마이와 비슷해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이돌 문화와 연애 금지 조항에 대한 취재를 하다가 시나리오의 방향이 여러번 바뀌었다. 후카다 감독은 “처음엔 아이돌 업계의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으로 구상했다. 취재하다 보니 너무 심각한 사례가 많더라. 그런데 누구한테 이 작품을 보여줄까, 생각해보니 아이돌 산업 밖에 있는 사람들이 분노하는 작품은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여전히 아이돌을 꿈꾸는 10대들은 많고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팬덤도 큽니다. 이들이 보는 영화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사자성이 무엇보다 중요해 아이돌 출신 주인공도 찾은 거죠.”



그래서 영화는 소속사의 냉혹함만 고발하는 게 아니라 마이의 아이돌로 성공하고 싶은 의지와 사랑하고 싶은 욕구, 잊히는 게 두려운 마음, 생활인으로서의 고단함 등이 섬세하게 녹아든 성장담으로 완성됐다.



사이토 역시 계약서에 사인할 때 연애 금지 조항을 봤지만 크게 고민하진 않았다고 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저를 포함해 주변 아이돌 친구들은 크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일본에서 아이돌은 팬과 상호 소통하는 게 중요하고 초창기부터 팬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걸 우선시하다 보니 연애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았죠.”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일본 아이돌의 차이도 덧붙였다. “한국의 여성 아이돌은 오랜 준비를 하고 춤과 노래 모두 높은 수준으로 데뷔해요. 여성들도 동경할 만큼 멋있죠. 반면 일본은 성장 서사를 중요시하면서 팬들이 ‘내 아이돌은 내가 지켜줘야 한다’ 이런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아이돌의 연애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돌 그룹의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다룬 신작 ‘연애재판’으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후카다 고지 감독. 백종헌 씨네21 기자 legend@cine21.com

아이돌 그룹의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다룬 신작 ‘연애재판’으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후카다 고지 감독. 백종헌 씨네21 기자 legend@cine21.com


후카다 감독은 “아이돌 계약서의 연애 금지 조항은 없어지는 게 맞다”면서도 이번 영화를 찍으며 아이돌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마이가 속한 그룹의 활동을 촬영할 때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제 사이토 팬클럽에 참여를 요청했다. “보통 공연 장면의 관객들은 엑스트라를 씁니다. 당연히 재촬영을 싫어하죠. 그런데 진짜 팬들이다 보니 재촬영을 더 즐거워하고 진심으로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영화의 디테일을 만드는 데 팬분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그는 “이 영화가 일본에서 공개되면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냐”는 기자의 질문에 “네!”라고 간결하게 답하며 덧붙였다. “영화를 통해 어떤 해답을 가질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과 연애 문제, 마이의 선택 등에서 관객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각자의 결론을 선택했으면 해요.”



후카다 감독의 차기작은 한국 배우와 함께하는 한국어 영화다. 그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 등 아시아 국가들의 공동 제작이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며 “배우 송강호·배두나와 언젠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부산/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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