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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시각각]반중 시위 막고, 반미 시위 방관?

중앙일보 장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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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시각각]반중 시위 막고, 반미 시위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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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격돌하는 와중에 반중 시위와 반미 시위에 대한 정부의 다른 태도를 지적한 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이 눈길을 끌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이 대통령이 반중 시위에 대해 '이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고 깽판이다'고 말했는데, 총리는 동의하시냐"고 질의했다. 김민석 총리는 "아마 그렇게 표현할 만한 혐오적 표현이나 행동이 있어서 (이 대통령이) 지적했을 것 같다"며 답했다. 김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얼굴 사진과 미국 성조기를 찢는 반미 시위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라며 재차 따졌다.

중국의 부정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해온 보수 성향 단체들이 지난 19일 서울 명동 집회가 경찰에 의해 제한되자 종각 인근에서 반중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중국의 부정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해온 보수 성향 단체들이 지난 19일 서울 명동 집회가 경찰에 의해 제한되자 종각 인근에서 반중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시위에 대한 이중잣대 논란의 배경을 알려면 지난 9일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볼 필요가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가까운 명동 일대의 반중 시위를 지적하면서 “만약에 어느 나라에 갔는데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욕하고 삿대질하면 다시는 (그 나라에) 안 갈 것 같다. 명동에서 그러던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윤호중 장관이 “모욕적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경고 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면서 구체적 대책을 주문했다. 윤 장관이 “표현의 자유 영역이라고 해서...”라며 말끝을 흐리자 이 대통령은 “이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깽판이지. 깽판 쳐서 손님을 내쫓으면 (불법적) 업무방해 아니냐"며 강한 대책을 지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 도중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 도중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사실 이 대통령이 반중 시위를 콕 집어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도 "중국 외교 공관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혐오 시위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에 앞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단체가 명동에서 오성홍기를 찢고 '차이나 아웃'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계속하자 지난 7월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 외교부 당국자를 만나 대책을 호소했다.



대통령 "명동 시위는 깽판" 비판에

야당 "왜 반미 시위엔 아무 말 없나"


같은 잣대로 대응, 집시법 개정을

이런 와중에 이 대통령의 반중 시위 엄중 대응 지시가 있자 지난 12일 경찰은 명동 시위에 대해 집회 제한을 통고했다. 경찰 통제가 강화되자 반중 시위대는 중국인 밀집 지역인 서울 대림역 쪽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러자 김 총리는 지난 19일 "해당 지역 상인과 주민, 체류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불편과 불안감이 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강력하게 조치하라"며 경찰에 지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논의하기 위해 방중한 조현 외교부 장관이 1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논의하기 위해 방중한 조현 외교부 장관이 1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대통령과 총리의 반중 시위 강력 대응 지시 시점이 흥미롭다. 오는 29일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최장 15일) 방한 허용으로 많은 중국인이 몰려올 것이 예상되자 관광산업 활성화를 고려한 정부의 사전 조치일 수 있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과 국빈 방한을 논의하기 위한 조현 외교부 장관의 방중(17~18일)을 앞둔 시점이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시 주석이 방한하면 2014년 이후 무려 11년 만이자 이 대통령과 첫 만남이 성사된다.


문제는 반미 시위도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공개된 타임지 인터뷰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관세 협상과 관련해 “그대로 합의했다면 (내가)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방안 갈등과 이민 당국의 기업인 집단 체포 사건 등으로 반미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 트럼프의 APEC 방한을 앞두고 있다. 앞서 2017년 11월 방한한 트럼프의 국회 연설 도중에 반미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운 사건이 벌어졌다.

2017년 11월 진보 성향 단체 회원들이 주한 미국대사관 옆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11월 진보 성향 단체 회원들이 주한 미국대사관 옆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헌법상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겠지만, 불법 시위는 엄단해야 마땅하다. 걸핏하면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과도한 시위까지 용인해 온 현행 집시법은 이참에 대폭 개정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반중이든, 반미든 불법 시위에는 같은 기준을 적용해 특정 국가를 편들거나 차별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균형 잡힌 메시지를 내놓기 바란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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