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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대림동에 간 혐중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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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대림동에 간 혐중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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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로저비비에' 윤석열·김건희 뇌물수수 혐의 경찰로 이첩
중국 출신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천멸중공(天滅中共)’ 집회가 열렸다. 명동 중국 대사관 인근에서 매주 열리던 이 집회는 상인들이 소음·욕설, 외국인 관광객 이탈 피해를 호소하자 경찰이 집회 제한 통고를 내렸고, 그 장소가 대림동으로 옮겨졌다. 중국 공산당 비판을 내세웠지만, 중국인 혐오와 모욕이 난무했다.

차이나타운 입구인 대림역 10번 출구에 집회가 신고되었으나 경찰은 상권 피해를 이유로 4번 출구로 제한했다. 4번 출구는 상가는 거의 없으나 학교가 인근에 있어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이다. 중국 국적을 포함한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집회 참가자들의 상스러운 혐오표현이 울려 퍼졌다. 일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에 의한 ‘교토조선 제1초급학교 습격 사건’을 연상케 한다. 수업시간 중 커다란 확성기로 조선인들을 욕하는 일본인들의 목소리에 학생들은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가 절대적 권리는 아니며,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정도의 표현을 넘어 폭력을 선동하거나 차별을 구조화하여 타인의 존엄과 인격권,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제한할 수 있다.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영역이 아니다.

대림동이 혐오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종종 범죄 온상으로, 바이러스 발원지로 폄훼되었으며 대중매체와 언론이 이를 부추겨왔다. 대림동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차이나 아웃’을 외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편견과 혐오를 키워온 사회적 배경 위에서 지금 집회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주민들은 그래서 더욱 착잡하고 씁쓸하다. 괜히 구설에 오를까 움츠러들고, 왜 우리만 이렇게 표적이 되느냐는 억울함이 차오른다.

2010년대 일본에서 재특회의 공격에 맞서 시민연대 ‘카운터스’가 등장했다. ‘차별 반대’ 맞불 시위를 하고, 혐한 시위대를 몸으로 막는 등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였다. 카운터스의 활동은 2016년 일본에서 ‘일본 밖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시책 추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 법은 국가의 적극적 조치 의무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주민과 선주민들이 혐오에 맞서 연대하고 있다. 지난 7월 대림동에서는 이주민과 선주민 200여명이 함께 모여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제도 변화는 더디다. 혐오표현 규제법은 보수 기독교계 반발로 발의가 철회되었다. 혐오에 맞서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뒷걸음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십수년째 제자리걸음인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더 이상 혐오의 확성기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대림동의 경험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직면한 도전이다. 다양성과 연대, 평화와 공존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다. 혐오가 아니라 존중과 공존이 일상이 되는 대한민국,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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