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프랑스의 재정 위기가 국가신용 위기로 번지고 있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늘어난 국가부채 부담을 덜기 위해 ‘지출 축소’와 ‘증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국채 불안
피치는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습니다. A+는 한국, 영국보다 한 단계 아래입니다. 피치는 “프랑스 국가부채가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113.2%에서 2027년 121%로 증가할 것”이라며 “앞으로 몇 년간 부채를 안정화할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강등은 의회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킨 지 일주일 만에 이뤄졌습니다. 바이루 전 총리는 지난 8일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연금·보건 지출 삭감을 포함한 440억유로(72조원) 규모의 긴축 예산안과 공휴일 이틀 축소를 내놨지만, 신임 투표에서 패배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프랑스 전국에서 ‘모든 것을 막자’면서 복지 축소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금융시장은 휘청이고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3일 최근 프랑스 국채금리가 최근 로레알, 에어버스, 악사 등 10개 프랑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금리를 웃돌았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의 GDP 대비 부채 규모(113.2%)는 그리스(152%)나 이탈리아(138%)보다 낮지만, 최근 국채 금리는 그리스보다 높습니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가 그리스 국채보다 더 불안하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프랑스 시위대가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모든 것을 차단하자’ 시위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위기대응 지출과 대규모 감세
프랑스 재정 위기의 원인으로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크게 두가지입니다. 코로나19와 유럽의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한 대규모 지출,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의 감세 정책입니다.
프랑스는 코로나19 대유행기인 2020년 이후 2400억유로(393조원) 이상을 지출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GDP의 10%인 1700억유로(278조원)를 썼는데,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에너지 위기 때는 보조금으로 720억유로(118조원)를 풀었습니다.
또 하나의 뇌관은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집권 이후 시행한 대규모 감세입니다. 자비에르 라고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OFCE) 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2017년 이후 프랑스 전체 부채 증가의 절반은 영구적 감세 때문이고, 나머지는 위기 대응 지출 때문”이라며 “현재 팬데믹의 왜곡이 완화되면서 드러난 더 장기적인 문제는 마크롱 대통령의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라고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회계감사원은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매년 500억유로(82조원)의 세수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산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33%에서 25%로 내렸습니다. 자본소득세와 부동산 보유세를 완화하고 1주택 거주자의 주민세도 폐지했습니다. 그 결과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달렸습니다. 그의 감세 정책은 2018년 유류세 인상안에 반발하는 ‘노란 조끼 운동’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부자 감세의 부담을 유류세 인상으로 서민들에게 떠넘겼다는 반발이었습니다.
감세의 경제 활성화 효과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미국 보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일 “마크롱 대통령이 감세한 지 8년이 지났지만, 호황은 찾아오지 않았다”며 “반면 감세로 발생한 엄청난 재정적자는 프랑스에서 가장 심각한 정치 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프랑스의 싱크탱크 공공정책연구소는 “감세 정책은 스타트업과 기업가들의 프랑스 이주를 촉진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마크롱 정부는 감세를 하면서 그만큼 지출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GDP 대비 프랑스 정부 지출은 57.1%로 유럽에서 높은 편입니다. 공공 사회지출도 많지만, 매년 기업에 주는 조세·재정 지원 등 공적 자금만 2110억유로(346조원)에 달합니다.
프랑스에 낭트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열린 ‘모든 것을 막자’ 시위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자”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
르코르뉘 총리, ‘부유세’ 도입 시험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새 프랑스 총리는 재정 위기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지난 9일 취임했습니다. 르코르뉘 총리의 정치적 시험대는 야당이 요구하는 부유세(일명 ‘주크만세’) 도입 여부에 달렸습니다.
부유세란 1억유로(1640억원)를 초과하는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최소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유세를 처음 제안한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은 이 제도가 상위 1800가구만 대상으로 하지만, 연간 최대 200억유로(33조원)의 세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는 바이루 전임 총리가 제시한 긴축 규모의 거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증세와 지출 축소 모두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023년 기준 45.6%로 EU 최고 수준이고, 사회지출은 GDP의 32%로 EU 평균(26%)보다 높습니다. 사회 복지 삭감에 대한 국민 저항도 거셉니다.
프랑스 위기는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 발표가 각각 올 10월과 11월 예정돼 있어 더 심화할 수 있습니다. 등급이 더 내려가면 국채이자 부담이 커져 나랏빚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제프리스의 모히트 쿠마르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CNBC 인터뷰에서 “정치적 혼란이 3~6개월 이상 지속되고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등급을 낮추는 경우, 프랑스 부채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프랑스 재정 위기를 돌아보면서 한국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재정지출은 22.6%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37개 선진국 재정지출 평균(40.6%)의 절반 수준입니다. 한국은 세 부담도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한국의 중앙정부 기준 GDP 대비 재정수입은 22.1%로 선진국 평균(35.6%)과 신흥국 평균(24.4%)보다 낮습니다. 프랑스가 고부담-고복지 체제라면, 한국은 저부담-저복지 체제입니다. 아직은 정부 지출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간과해선 안 될 점이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빨라 몇십 년 뒤엔 사회복지 지출이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을 비롯한 회원국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라고 권고합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공공 재정이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지 않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을 뜻하는데요.
정책적 노력은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세금)을 늘리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 프랑스 전역서 18만명 반정부 시위···르코르뉘 내각, 출발부터 ‘삐그덕’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11534001
☞ 9개월 만에 무너진 바이루 내각···마크롱 정부 ‘위기’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091553001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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