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데일리 언론사 이미지

미국 노동자들, 트럼프 취임후 해외 탈출 러시

이데일리 방성훈
원문보기

미국 노동자들, 트럼프 취임후 해외 탈출 러시

속보
검찰, '패스트트랙 충돌' 민주당 사건도 항소 포기
미국인의 英·아일랜드 시민권 신청 역대 최고
관련업체 문의 폭증…美정부 대량 해고도 영향
고소득·전문직도 이주…연봉·처우 절벽 감수
"트럼프 정책에 신물…탈출구 존재만으로 안도감"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버클리대학 졸업 후 정부에서 수년 동안 책임분석가로 일했던 샘 파커스(33)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정부 부처가 축소되는 것을 보고 해외 이직을 결심했다. 앞으로 미국에선 경력을 쌓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해서다. 그는 지난 7월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8월부터 기술 업계에 취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점점 독성이 강해지는(toxic) 정치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취업을 고려하는 미국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인이 영국 시민권을 신청한 건수는 2194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50% 급증했다. 이는 올해 1분기 1931명과 비교해 13.6% 증가한 규모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아일랜드 여권을 신청한 미국인도 지난 2월 4327명으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1월까지 합치면 약 8600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0% 폭증했다.

(사진=AFP)

(사진=AFP)




해외 이주 중개업체 및 이민 변호사들은 영국과 캐나다와 같은 영어권 국가와 서유럽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시민권 취득 자문회사를 운영하는 마르코 페르무니안은 “지난 12년 동안 사업을 해왔지만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스페인 시민권 취득을 지원하는 뷰로크러시의 소유주 마리나 헤네스트로사도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비즈니스가 말 그대로 폭발했다”고 거들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 이민 컨설팅·국적 신청 대행업체들도 “최근 들어 단순 문의가 실제 이민·취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급증했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전체 경제활동 인구와 비교하면 해외 이주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아울러 기회만큼이나 언어, 자격, 경력 단절 등 현실적 장애도 크다. 특히 이주를 고민하는 경우 연봉이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를 감수해야만 한다고 FT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고도로 숙련된 근로자들의 대규모 손실을 우려했다. 미국 이민 자문사 엑스팻시의 젠 바넷 공동창립자는 “과거에는 경계선 또는 변방에 있는, 즉 취업이 어렵거나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해외로 떠났다면, 현재는 커리어적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더 많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전에는 해외 취업이나 이민을 망설였던 중산층이나 고경력·고임금·전문직까지 “미국에서 요구되는 조직문화나 가치가 맞지 않는다”며 해외 이주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3~2024년 미국에서 국제 기업에 취직한 직장인이 60% 이상 늘었고, 프리랜서·디지털 유목민 등 원격근로로 이주한 미국인도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여성 리스크 분석가 바네사는 의뢰인 중 상당수가 연방 정부에서 일자리를 잃은 뒤 해외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직 출신은 엘리트 계층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성소수자 가족들이나 여성 근로자의 문의도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사업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해외에서 안정을 모색하고 있다.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피해 안전한 새 국가를 찾으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진=AFP)

(사진=AFP)




주목할만한 점은 대부분이 해외 이주에 따른 연봉·처우 절벽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임금은 8만 3000달러(약 1억 1500만원)으로 프랑스의 6만 1000달러(약 8450만원)와 비교해 2만달러 이상 높다. 샌프란시스코(실리콘 밸리)나 뉴욕과 같은 주요 허브 도시나 기술 분야에선 이러한 격차가 훨씬 클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이주를 시도하는 상당수는 새로운 직무에 지원하기보다는 유럽에서 원격으로 미국 내 일자리를 이어가기를 원하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 급여 하락 및 시차에 따른 어려움 등은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남은 자리가 많지 않다. 채용업체인 로버트 하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미국 내 구인 공고 중 12%만이 완전한 원격 근무를 허용했다. 해외 근무 허용은 훨씬 더 적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불안에 떨고 있거나 이주를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는 일부 미 근로자들은 “해외에서도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FT는 “이민 문의 자체가 심리적인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