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부국제 개막작으로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 상영
뼈아픈 현실 풍자와 고증…독창적 미쟝센까지
부국제 개막작으로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 상영
뼈아픈 현실 풍자와 고증…독창적 미쟝센까지
[부산=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삶과 다투는 당신과 우리를 과몰입으로 이끌 박찬욱표 블랙코미디의 정수. 독창적 미쟝센, 빼어난 앙상블, 뼈아픈 현실 고증, 코미디 끝에 남는 씁쓸함까지. ‘어쩔 수 없이’ 극장에서 N차 관람할 올해 최고의 스크린 체험.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해 주목받고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국제) 개막작에 선정된 ‘어쩔수가없다’는 부국제가 개막한 17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자에서 아시아 최초로 프리미어 상영됐다. ‘어쩔수가없다’는 이에 앞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프리미어 상영회,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 프리미어 상영회로 공개돼 외신들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베니스 상영회 당시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평점지수가 100% 만점을 받은 가운데, 이날 현재까지 40개 매체가 점수를 매긴 가운데 평점 100%를 유지하고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해 주목받고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국제) 개막작에 선정된 ‘어쩔수가없다’는 부국제가 개막한 17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자에서 아시아 최초로 프리미어 상영됐다. ‘어쩔수가없다’는 이에 앞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프리미어 상영회,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 프리미어 상영회로 공개돼 외신들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베니스 상영회 당시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평점지수가 100% 만점을 받은 가운데, 이날 현재까지 40개 매체가 점수를 매긴 가운데 평점 100%를 유지하고 있다.
소설 원작인 ‘액스’는 제지회사에 20여 년간 근속하며 아내와 아들, 딸, 집까지 부족할 것 없는 단란한 생활을 누리던 주인공이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고 재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를 그린다. 또 주인공이 가짜 제지 회사 구인 광고로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받아낸 뒤 제거할 경쟁자를 추려내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갈등과 시행착오를 세밀한 심리 묘사로 전개해 공감을 유발한다.
이날 베일을 벗은 ‘어쩔수가없다’ 역시 큰 틀에서는 대체로 원작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대신 원작이 조금 더 주인공의 1인칭 심리 묘사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어쩔수가없다’는 시선의 확장, 블랙코미디 요소, 시대상 반영과 함께 한국적인 색책를 입혀 새로운 장르적, 영화적 매력을 확보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코미디다. 그 전에도 작품에 늘 잔잔하게 크고 작은 유머 요소들을 살짝씩 녹여냈던 박 감독이지만,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우아하면서도 신랄한 풍자의 정수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만수가 아내 미리(손예진 분)에게 약속했던 재취업 기한 3개월을 넘기며 집에 각종 체납 고지서들이 날아오자 미리가 넷플릭스 구독부터 끊어버리는 장면, 자신의 직업과 집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는 제지 회사 반장 선출(박희순 분)의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을 챙겨보며 이를 가는 만수의 모습, 제지 회사 공장에 새롭게 도입된 인공지능(AI) 시스템 등 다소 올드한 원작 속 시점을 재치있게 현대식으로 각색한 신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주인공 만수의 시선을 주로 따라가기는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시선, 만수의 타깃이 된 경쟁자와 경쟁자 가족의 시선을 함께 담아낸 점도 눈길을 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의 캐릭터성과 개성, 시선을 살려 원작에서는 확인할 수 없던 숨은 맥락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는 재미가 추가됐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가족에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자신만의 외로운 전쟁과 계획을 이행해가는 만수의 위태로운 모습을 처음엔 만수의 심리에서 공감하며 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는 만수보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미리와 아들 시원, 딸 리원의 표정에 더 눈길이 간다. 만수가 꾸민 일을 눈치챘을 때 아내 미리, 아들 시원의 행동은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보는 게 또 다른 몰입의 영역이 된다.
‘내 집, 내 공간, 내 가족에 대한 집착’이 강한 만수의 성격을 한국의 문화적 풍토에 맞게 집, 온실 등의 공간 미술로 표현해낸 점 역시 관전포인트다.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범모(이성민 분)의 성격도 아라(염혜란 분)와 범모의 집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만수의 집은 ‘내 집 마련’이란 화두에 유독 민감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만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담아 동화적이고 탁 트인 화려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집 곳곳의 공간이 외부의 시선에서 차단돼 단절된 느낌도 주는 요새의 이미지를 동시에 풍긴다. 특히 만수가 식물을 키우는 온실은 가족들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한 만수만의 공간이자 위험한 미션을 계획하는 전략기지의 느낌까지 준다. 식물을 사랑하는 만수의 취미, 거칠게 구불지고 뻗은 나무와 화초를 분재하며 고군분투하는 만수의 모습에서 엿보이는 통제욕과 굴곡진 인생까지. 영화 속 모든 디테일과 미쟝센이 극 중 인물들, 이 이야기의 새로운 힌트가 돼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박찬욱 감독의 미쟝센에 한몸처럼 녹아든 베테랑들의 열연과 앙상블이 러닝타임 내내 과몰입과 감탄, 탄식을 유발한다. 매 작품 ‘신들린 열연’이란 수식어를 불러온 이병헌은 오랜만에 재회한 박찬욱 감독과 제대로 된 시너지를 발휘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짠한 가장 만수는 가족을 지키고 인생을 바친 제지 회사 직무를 되찾겠단 순수한 일념 하나로 도덕성을 상실한 악마가 되어간다. 평범한 가장이 갑작스레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나타나는 흉기 사용, 염탐 등에서의 미숙함, 내가 제거해야 할 대상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연민, 자신의 정보를 제거 대상에 함부로 발설하면 안되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신세한탄을 토로하듯 털어놓는 만수의 짠한 모습까지. 이 서글프면서도 극단적인 타락의 과정을 이병헌은 탁월한 캐릭터 해석과 보편화, 얼굴을 갈아끼운 열연으로 그려 관객을 설득한다.
애교많고 낙천적인 현모양처 아내이지만,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현실적인 엄마, 아내의 모습을 많지 않은 분량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인 손예진은 만수의 모습에 또 다른 입체감을 불어넣는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성민, 박희순, 차승원, 염혜란도 주인공 못지 않은 강렬한 존재감과 개성, 인간미와 비애로 빈틈없이 극을 꽉 채운다. 특히 극 중 아라와 범모로 분한 염혜란, 이성민의 부부 케미스트리, 염혜란, 이성민, 이병헌의 삼자 대면 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과 짠함을 유발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박찬욱 감독의 바람대로, ‘어쩔수가없다’가 한국영화를 위기의 구렁렁이에서 꺼낼 긍정적 신호탄이 되어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국경 불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불안을 건드리는 서늘하고 구슬픈 이야기다. 가족을 지키려 타락한 만수, 만수처럼 생각하지 못해 피해자가 된 경쟁자 이들 중 누구 하날 손가락질 할 수 있나, 같은 상황에 놓인 나라면 어느 쪽이 될까 수많은 생각을 안기는 작품이다.
24일 국내 개봉. 러닝타임 139분.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