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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부산영화제, 왜 서울 아닌 부산서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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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부산영화제, 왜 서울 아닌 부산서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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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앞둔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영화팬들이 부스 체험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앞둔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영화팬들이 부스 체험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은 필연적이면서 돌출적이었다. ‘싸구려’로 무시받던 가요와 영화가 1990년대 중반 들어 본격적인 산업의 도약대에 올랐고, 홍대 앞 인디밴드와 예술영화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국제영화제 탄생에 마중물이 됐다.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서 영화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이용관 경성대 교수, 김지석 부산예술대 교수, 전양준 영화평론가 등 부산 기반의 영화인들이 뭉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동호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해 아시아 중심의 비경쟁영화제로 동을 떴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예술영화 중심의 영화제가 성공할 리 없다는 주변의 냉소가 무색하게 첫 회부터 남포동 일대를 영화팬들로 가득 채우며 성공의 신호탄을 쐈다.



이후 아시아 영화 작가의 산실로서 서구 영화제와 차별성을 가지며 자리 잡았다. 1회부터 참여한 올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자 자파르 파나히를 비롯해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 자국에서 핍박받던 이란 영화인들에게 부산영화제는 창작의 출구이자 세계 관객과 만나는 첫번째 창구가 됐다.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의 자장커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도 부산영화제였다. 1998년 데뷔작 ‘소무’로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자장커는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2006년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출석 도장 찍듯 부산을 자주 찾은 자장커는 지난해 “제 영화 인생이 부산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은 늘 그리운 곳”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30년 세월 동안 그늘과 상처도 있었다. 2014년 부산시가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취소 압력을 넣었지만, 영화제는 상영을 강행했다. 이후 부산시는 보조금 삭감과 함께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겨냥해 강도 높은 감사를 벌였고, 이는 영화제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제적 논란으로 확산됐다. 국내 영화인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이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면서 대대적 조직 개편이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에 불거졌던 갈등의 불씨가 202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2023~2024년 영화제는 집행위원장 공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영화제 창립 멤버로 초창기 부집행위원장을 맡았다가 지난해 돌아온 박광수 이사장은 올해 30돌을 맞은 영화제의 변화를 추동한 장본인이다. 그는 “게스트, 관객, 시민 등 영화제를 방문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영화제 운영 방식을 개선할 필요를 느꼈다”며 “경쟁 부문을 신설하는 것이 아시아 영화를 부각하는 데 있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부산/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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