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은 정기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이 처리되는 달이다. 9월 3일에는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이 국회에 제출됐다. 장기재정전망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5년마다 실시하는 것으로, 앞으로 40년 후인 2065년까지의 국가재정이 어떨지 예상한 것이다. 이번 전망의 핵심은 2024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46%였던 국가채무가 2065년에는 165%를 넘어설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도 프랑스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상황이니 단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정부 빚이 늘어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용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빚은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극도로 어려우며, 더구나 정부의 빚은 온 국민이 이해관계자라 줄이기가 더 어렵다.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으려면 미리 국가재정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돈 쓰는 방식, 세금 걷는 내용 모두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은 정권이 바뀌면서 '세제개편안'으로 이름이 달라졌지만 세금 걷는 내용이 구조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기재정전망에서 나온 우려를 제대로 담으려면 내년부터가 진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드러난 새 정부의 접근 방향에 대해 몇 가지 걱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씀씀이가 늘어남에 따른 불가피한 증세를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다.
올해 법을 바꿔 증세하겠다는 대표적인 두 가지가 법인세율과 교육세율이다. 법인세율은 네 개의 과표구간 모두에서 1%포인트씩 올리는 것으로, 모든 법인에 적용되는 것이다 보니 논의 초반부터 관심을 모으고 논란도 많았다. 한편 교육세율은 기존에 금융·보험업자의 수익금액에 0.5%씩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에서, 수익금액이 1조원을 초과하는 부분에는 1%를 적용하는 누진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수익금액이 1조원 이상 나는 대형 금융회사만 증세 대상이어서 상대적으로 조용히 통과될 모양이다.
첫째 걱정은 둘 다 사람(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증세 대상으로 하는 쉬운 선택을 한 것이다. 개인이 세금을 낸다고 쉽게 인지하는 세금은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정도다. 소득세는 번 돈에, 부가가치세는 쓴 돈에 과세가 되기 때문에 국민의 체감도가 높다. 이들 외에는 조세 저항이 적다. 법인세를 더 걷으면 직원의 성과급과 주주의 배당 재원이 줄어들지만, 직원이나 주주가 결집해 이를 반대하기 쉽지 않다. 교육세의 경우 큰 금융회사의 고객에게 세금이 일부 전가되겠지만 이러한 간접 효과 때문에 금융소비자들이 반발할 것 같진 않다. 가랑비에 옷 젖듯 부담은 번질 테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이렇듯 정부가 쉬운 선택만 반복할까봐 걱정인 것이다.
둘째 걱정은 누진제를 확대하는 경향이다. 우리나라의 누진제 사랑은 유별나다. 소득세를 누진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많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구간 개수가 많다. 법인세, 상속세도 마찬가지다. 세금이 아닌 전기요금, 수도요금도 누진제를 적용한다. 이제 교육세까지 누진제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누진제는 구간을 지속적으로 최신화하지 않으면 물가 상승에 따라 저절로 증세가 되고 세수 변동성이 커지는 등 문제가 있다. 교육세의 경우 큰 금융회사의 고객이 더 부자여서 궁극적으로 더 많은 세금 부담을 해야 하는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저항을 회피하고 프레임에 갇히면 엄청난 부채 폭탄을 청년과 아이들에게 남기게 된다. 정부가 더 필요하고 더 효과적인 곳에 돈 쓸 자신이 있으면 국민을 설득하고 세금도 정정당당하게 더 걷어야 할 것이다. 거대 여당을 가진 정부라면 할 수 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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