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FC의 손흥민이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와 원정경기에서 전반 52초 만에 선제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샌타클래라=AFP 연합뉴스 |
'동료에 해트트릭을 양보하고 겨우 넣은 한 골'과 '총 1조 원 이상 선수들의 승부차기를 날려버린 한 골'에 축구 팬들이 아쉬움의 보냈다. 두 골은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미국프로축구(MLS)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은 미국에서 뛴 레전드 펠레, 리오넬 메시와 비교되는 등 미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15일(한국시간) "손흥민은 단순히 경기장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그의 존재는 드니 부앙가와 동료들을 뛰어넘어 클럽 전체를 끌어 올리고 있다"며 "이는 1970년대 펠레의 뉴욕 코스모스, 2023년 메시가 합류한 인터 마이애미 시절 외에는 미국 축구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라고 짚었다.
손흥민은 지난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와 원정경기에서 전반 52초 만에 선제골을 터뜨렸다. 6만여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손흥민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했다. 새너제이는 MLS에 부는 '손흥민 효과'를 깨닫고, 원래 홈구장인 1만8,000석 규모의 페이팔 스타디움 대신 6만8,000명 관중을 수용하는 리바이스 스타디움으로 바꿨다.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종전 홈경기 최다 관중 수(5만850명)를 넘어 5만978명의 관중이 모여들었다. 경쟁 팀이 손흥민 덕분에 엄청한 수혜를 받은 셈이다.
손흥민이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로스앤젤레스FC와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의 경기를 4-2로 승리한 뒤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샌타클래라=AFP 연합뉴스 |
손흥민이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와 원정경기에서 전반 52초 만에 선제골을 넣고 드니 부앙가(오른쪽) 등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샌타클래라=로이터 연합뉴스 |
손흥민은 이날 경기 시작 52초 만에 골을 넣으며 기대에 찬 관중들에 보답했다. 그러나 더 이상 손흥민의 골은 나오지 않았고, 이날 '투 톱'으로 나섰던 부앙가가 전반 9분과 12분, 후반 42분 해트트릭을 터뜨렸다.
그런데 손흥민을 열광하며 "쏘니!"를 연호하던 팬들은 후반 35분이 되자 서서히 경기장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손흥민이 다비드 마르티네스와 교체된 시점이다. 이날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한은혜씨는 "손흥민이 더 많은 골을 넣기를 원했는데, 후반 갑자기 교체돼 나와 아이들이 실망했다"며 "그래서 남은 경기를 뒤로 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손흥민이 골을 넣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는데, 교체 아웃돼 더 이상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자 경기장을 나온 것이다.
실제로 부앙가의 해트트릭은 이날 관중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경기장을 찾은 5만여 관중들은 오로지 손흥민의 득점 장면을 원한 듯했다. MLS 공식 유튜브 채널만 봐도 그렇다. 16일 오후 손흥민의 선제골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조회수 78만 회를 넘겼지만, 부앙가의 해트트릭 동영상은 조회수가 3,000회 조금 넘었다. 이날 역시 해트트릭을 기록한 토마스 뮐러(벤쿠버 화이트캡스)의 동영상도 10만 회가 안된다. 짧게 편집한 쇼츠 동영상도 손흥민 골 장면은 28만 회 조회수를 보인 반면, 부앙가 해트트릭 영상은 5,000회, 메시가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영상도 7만 회를 넘겼을 뿐이다.
16일 미국프로축구(MLS)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 홈페이지 캡처 |
이러니 MLS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 첫 화면은 손흥민 차지다. MLS 사무국은 'LAFC의 역동적인 듀오'라는 제목으로 손흥민과 부앙가의 사진을 게재했다. 내용도 부앙가의 해트트릭보다 손흥민을 부각하며 "손흥민과 부앙가가 최전방에 함께 섰다. 새너제이는 수비 전환에 어려움을 겪으니 손흥민이 이를 봐줄리 없다"면서 "손흥민은 공격진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경기 시작 1분 만에 골을 넣었다. 부앙가는 경기 종료 휘술이 울리기 전에 세 골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LAFC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손흥민 얼굴을 내건 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은 조회수 50만 회를 넘겼다. 반면 부앙가의 해트트릭 장면은 고작 760회 조회수를 나타냈다.
이쯤되면 손흥민의 골 장면이 더 나와주는 게 MLS와 LAFC를 도와주는 일이다. MLS는 이날 경기에서 주심의 가슴에 카메라를 달아 '레프리 캠'을 라이브 중계 송출하며 처음 시도했다. 관중이 많이 몰릴 것으로 기대되는, 주목 받는 경기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첫 공개한 셈이다. MLS는 내년 북중미 월드컵을 개최하기 때문에 여러 시도를 하며 미국 축구를 알리고 싶은 것이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LP) 득점왕까지 한 손흥민을 통해 MLS를 알리고, 그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속내가 드러난다.
최근 손흥민은 현지의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EPL과 MLS를 비교하면 어떤가'라는 다소 예민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경기 퀄리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선수들의 열정, 실력, 조직력 등이 정말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여기 와서 경기를 이기고 싶었지만 정말 어렵다"고 MLS의 수준이 높다고 답했다. 손흥민을 이용해 MLS 홍보가 제대로 된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보도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MLS와 LAFC는 손흥민이 많은 골을 넣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미국 중계 방송의 한 해설자도 "손흥민이 골을 양보하는 것보다 욕심을 내서 넣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한 골 넣었을 뿐인데...악플 세례 받은 박주호, 그리고 사과
박주호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 축구 국가대표 출신 박주호는 최근 손흥민 사례와는 반대로 질타를 받았다.
박주호는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실드 유나이티드(수비팀)와 FC스피어(공격팀)의 2025 넥슨 아이콘 매치에 출전했다. 실드 유나이티드에서 뛴 박주호는 1-1로 팽팽하던 후반 극장골을 넣고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골을 넣자마자 관중석 쪽으로 달려가 기쁨을 표현하며 세리머니도 펼쳤다.
하지만 일부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1-1로 비긴 채 경기가 종료됐다면 승부차기가 진행됐을 텐데 박주호의 골로 승부가 갈렸기 때문이다. 이 경기는 축구 팬들이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전설적인 선수들이 총 출동해 화제가 됐다. 호나우지뉴, 티에리 앙리, 스티븐 제라드, 웨인 루니, 가레스 베일, 디디에 드로그바, 리오 퍼디난드, 애슐리 콜, 카를레스 푸욜, 잔루이지 부폰, 이케르 카시야스, 박지성 등 내로라하는 왕년의 축구스타들이 모였다. 현역 시절로 '몸값'만 따져도 1조 원이 넘는 가치의 선수단이다.
호나우지뉴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아이콘 매치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
가레스 베일이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아이콘 매치에서 슈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들을 보기 위해 6만 관중들은 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축구계의 전설적인 심판으로, '외계인 심판'이라는 별명이 있는 피에를루이지 콜라나 심판은 킥오프를 위해 경기장으로 나오면서 꽉찬 관중석을 보며 "와우~"를 연발했을 정도다. 전날 이벤트를 위해 4만여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온라인 누적 생중계 시청자 수도 340만 명에 달했고, 유니폼 전량도 매진되는 등 축구 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 정도로 한국의 축구 팬들은 역대급 축구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했다. 먼저 FC스피어의 루니가 후반 27분 특유의 강력한 중거리포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루니의 멋진 슈팅을 기대했던 팬들은 소원성취를 했을 만큼 환호성이 울러퍼졌다. 그러나 10분 뒤 실드 유나이티드의 마이콘이 우측에서 올라온 이영표의 크로스를 헤더로 마무리하며 동점골을 터뜨렸다. 양 팀은 팽팽하게 맞서며 그렇게 끝나는 듯 싶었다. 만약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됐다면 골키퍼 레전드로 불리는 부폰과 카시야스가 나서는 승부차기가 이어질 수 있었다.
웨인 루니(가운데)가 14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아이콘 매치에서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넣고 있다. 뉴시스 |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아이콘 매치에서 웨인 루니가 선제골을 넣자 스티브 제라르 등 FC스피어 동료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
그런데 박주호가 결승골로 승부를 끝냈다. 그는 후반 44분 욘 아르네 리세의 패스를 받아 역전골을 뽑았다. 한국을 대표해 출전한 박주호와 이영표가 각각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세워준 순간이었다.
실드 유나이티드를 지휘한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도 경기 후 "이영표와 박주호가 훌륭하게 경기를 소화했다. 박주호는 현역 시절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두 선수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온라인 반응은 달랐다. 박주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승부차기를 기대했던 일부 축구 팬들은 "너의 골을 보러 간 게 아니다" "승부차기를 보고 싶었다" "눈치가 없다" 등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박주호는 결국 '장문의 사과문'을 SNS에 게제했다. 그는 15일 오후 SNS를 통해 "2025 아이콘 매치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것만으로 큰 영광이었고, 저에게는 감사한 시간이었다"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한 그라운드에서 함께 뛸 수 있었던 것도, 팬분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제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아이콘 매치에서 실드 유나이티드의 카를레스 푸욜(오른쪽)이 FC스피어의 티에리 앙리와 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박시몬 기자 |
이어 "경기가 끝난 뒤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표현해 주셨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레전드 골키퍼들의 승부차기를 기대하셨을 팬분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저 역시 현장에서 그 대결이 성사된다면 얼마나 특별할지 잘 알기에, 여러분의 아쉬움에 깊이 공감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저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지만, 팬분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다양한 반응이 있다는 것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SNS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축구인으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값진 경험이라 생각한다. 따뜻한 격려든, 따끔한 조언이든, 모두 아이콘매치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기며 감사히 듣겠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경기에서 상대 팀에 골을 넣었다고 사과할 이유는 없다. 다만 박주호는 레전드 선수들의 활약을 더 보고 싶은 팬들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글을 올렸다. 한국 축구 팬들의 축구를 향한 열정이 그 어느 나라보다 뜨겁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