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은 없다"···대통령실, 침묵 속 힘겨운 한미 후속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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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강유정 대변인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09.14. photocdj@newsis.com /사진=최동준

한미 관세합의 후속 협상을 두고 정부는 물론 대통령실에서도 사실상 구체적인 발언들은 자제하며 협상이 장기전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용하기 어려운 미국의 무리한 요구와 한국 수출기업들의 관세 피해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지만 현재로서 절충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관세합의 후속 협상 진행상황에 대해 "정해진 목표가 있어서 목표 지점까지 가는 그런 협상 양식이 아니다"라며 "서로 새로운 조건들을 제시하며 최적의 균형을, 영점을 맞춰가고 있다. 국익을 위해 최대한 방어하는 관점에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 대통령실 관계자도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후속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정해진 데드라인은 없다"며 "협상을 이어가는 중"이라며 그 이상의 구체적인 발언은 아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모처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만나 대미 투자 관련 세부 내용에 대해 논의한 뒤 이날 새벽(한국 시간) 귀국했지만 인천국제공항에 대기중이던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한 채 자리를 떠났다. 한미 간 후속 협상 세부 내용을 두고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미 양국은 상호관세 적용 유예 만료일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말 큰 틀에서 관세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기존에 예고됐던 25%가 아닌 일본, EU(유럽연합)과 같은 15%를 매기는 대신 한국은 미국에 대해 총 3500억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하고 LNG(액화천연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를 1000억달러어치 구매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다만 3500억달러 투자 세부 내역과 운용 방식에 대해서는 후속 협상 과제로 남겨뒀는데 이 부분에 있어 한미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일본이 서명한 합의문에 담긴 내용과 비슷한 투자 방식을 우리나라에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보증·대출 등을 포함해 투자 방안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현금으로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투자 원금 회수 전까지 발생하는 수익은 한미가 5대5로 나누지만 투자 원금 회수 이후 수익은 미국이 90%를 가져가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투자처도 미국이 정해 45일 내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인천공항=뉴시스] 조성우 기자 =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을 출국하고 있다. 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정상회담 선발대로 이날(22일)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 등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2025.08.22. xconfind@newsis.com /사진=조성우

사실상 백지수표를 달라는 것과 다름 없는 요구에 우리 정부는 난색이다. 우리가 처한 경제 여건도 일본과 다르다. 지난 8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63억달러로 일본(1조3044억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만큼 미국의 주장대로 합의할 경우 외환시장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외교 협상은 말 못하는 부분도 많고 아직 완결 전이라 오가는 이야기를 말하기도 부적절하다"면서도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안 한다. 그리고 합리성과 공정성에서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후속 협상 전반을 총괄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지난 9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나와 "일본과 한국은 처한 상황이 너무 다르다. 그런 문안으로는 서명할 수가 없다"며 "(후속 협상이) 교착상태에 있다"고 했다.

문제는 후속 협상이 최종 매듭을 짓기 전까지 우리나라 대미 수출 품목이 25%의 관세를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으로 수출되는 우리 자동차에는 일본보다 10%포인트(P) 높은 25%의 고율 관세가 매겨지고 있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우리는 조선업 협력 제안도 했으니 일본보다 조건이 좋아야 하는데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은 무리한 조건이다. 받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일본은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크고 처한 상황도 다르다. 게다가 의원내각제라 전임 총리가 서명하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 정부가 상당히 어려운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우리 기업인 구금 사태도 후속 협상에 난항을 더한다. 미국 이민당국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체류·고용 단속을 벌여 한국인 316명을 체포해 구금시설에 억류했다가 일주일만인 지난 11일 석방한 바 있다.

김재천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 반미(反美) 여론이 강해졌다"며 "(대미 투자 등) 다 그만두고 돌아오라는 목소리까지 있지 않나. 우리 정부로서 국익에 반하는 후속 협상을 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절충안으로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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