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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과 서점…책으로 생존해 커뮤니티와 누린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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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과 서점…책으로 생존해 커뮤니티와 누린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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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독립서점 ‘카테고리 이즈 북스’의 안팎. 지난 8월2일 토요일 오전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점을 운영하는 핀(검은 옷)과 더피 부부(위 오른쪽), 이들이 분류해 둔 ‘햇살 속 게이’와 ‘역사’ 코너(아래)가 보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독립서점 ‘카테고리 이즈 북스’의 안팎. 지난 8월2일 토요일 오전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점을 운영하는 핀(검은 옷)과 더피 부부(위 오른쪽), 이들이 분류해 둔 ‘햇살 속 게이’와 ‘역사’ 코너(아래)가 보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 다음달로 1주년을 맞는다. 소수 언어권, 무엇보다 위기감과 패배감에 짓눌려온 한국 문학·출판계에 ‘벼락’처럼 안겨진 소식이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문학·출판계에 ‘이상 기후 전선’은 일찍이 형성되고 있었다. 주요 언어권에서 특히 독립출판이 일궈온 생태계다. 그들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위기의 활자’를 ‘기회의 활자’로 고쳐 쓰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강의 노벨상은 조금 더 늦춰지고 한국 문학·출판과 세계 독자의 만남 또한 더 빈약했겠다. 2025년 신흥 독립출판 세계의 기세와 족적을 한겨레가 직접 탐사해 소개한다. 1회 영국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독일 편을 잇고 또 하나의 언어권에서 장정을 마친다. 편집자





내년 창사 40주년을 맞는 영국 독립출판사 원월드의 줄리엣 메이비 대표는 초기 런던이 아닌 옥스퍼드에 출판사를 차린 것을 또 하나의 역경으로 기억한다. 특히 문화 산업에서 ‘지역성’은 차포 떼고 생존하길 요구하는 장기판이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제1도시 런던과 스코틀랜드 제1도시 글래스고에 문 연 서점만 1천곳 대 18곳 정도로 최소 추정 대비된다. 주드 로도, 휴 그랜트도 편집자나 서점 주인 한 데가 죄다 런던 일대(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노팅힐’ 중) 아니던가. 하지만 엘지비티(LGBT) 서점만은 글래스고 여기를 따를 데가 많지 않다.



‘카테고리 이즈 북스’(Category is Books)를 향해, 지난 8월2일 글래스고 클라이드강 남부로 기자는 또 걷는다. ‘위스키 나라’의 ‘불금’은 알 만하고, 이튿날인 토요일 오전 거리는 한적했다. 조깅하는 이도 손에 꼽았다. 그러다 도착한 앨리슨가의 독립서점만 달랐다. 마실 나온 이처럼 1시간여 주인과 잡담 나누는 이부터 개를 앉혀둔 채 책을 골라 사 가는 이들, 2층 다락창고 속 책을 뒤지게 하는 이들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2018년 이곳에 서점을 차린 핀 부부(둘 다 트랜스젠더로 알려져 있다)에게 또 묻고 말았다.



―책은 몇권이나 팔리는가, 가게 운영이 되는가?



“(파트너인 더피에게) 와, 우리 몇권 팔지? (기자에게) 1주에 한 200권 정도, 때에 따라 몇백권? 가능하고 말고요. 이 공간만 유지하면 되니까요.”



―성장에 관심을 두는지 궁금하다.



“그럼요. 어쨌든 책방이 우선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성장하고 있다고 보는가?) 매출에 관한 질문이라면, 충분히 팔려서 유지되고 있어요.”



서점은 ‘유지’를 넘어 소수자 모임과 정보, 지역 행사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핀의 말마따나 “사실 인기가 많다.” 후원이 필요한 곳과 후원자를 연결한다. 가게 창밖으로 ‘퀴어 호러 클럽’ ‘퀴어 교사 모임’ ‘퀴어 북 그랜파(할아버지)’ ‘남아시아 퀴어 북 그룹’ ‘글쓰기 워크숍’ 등의 모임 일정이 붙어 있다. 대범한 관대함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 서점 내 술은 금지. 완벽한 ‘비주류’다.



‘시집’ ‘소설’ ‘로컬’(글래스고·스코틀랜드 관련)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류해 둔 도서 진열대에서 ‘햇살 속 게이’(Gays In the Sun) 코너가 눈에 띄었다.



“퀴어들이 즐기는 여름, 계절적 삶이 잘 드러난 책들이죠. 계절은 모두의 것이니까요. 가을 게이, 겨울 게이 책들로 또 바뀝니다.”



그 코너 아래가 ‘히스토리’다. 모든 계절, 배제되지 않은 삶이 쌓여 작은 행성의 ‘역사’가 되겠다. 책방 한쪽엔 “젠더 규범에 맞지 않아도… 우리는 태양이 닿는 모든 곳에 있을 거야”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큐레이션 원칙은?



“계절마다 ‘카테고리’를 새로 정리하고, 1~2주 단위로 책을 또 바꿉니다. 언제나 있는 책, 잠깐 다녀가는 책들이 있죠.”



―어떻게 이곳에 책방을 열게 되었는지.



“의도가 있던 건 아녜요. 이 동네 살았거든요. 막상 열고 보니 지금처럼 비슷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최근 몇년 사이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책방과 커뮤니티가 함께 커졌어요.”



핀은 “지속가능한 서점을 위해 도서 판매와 커뮤니티 활동 두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점 내 모든 모임과 행사는 무료다. “공간을 만들어, 다 함께 모인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후원 모금도 트랜스젠더 의료 단체 등을 주최로 연결만 할 뿐 책방을 위해 하진 않는다. 말인즉, 책으로 생존하여 커뮤니티와 누리는 것.



서점과 커뮤니티의 동반 성장은 서점과 출판사의 동반 성장과 다르지 않다.



―최근 빅5 출판사의 퀴어 서적도 적지 않다고 했는데, 독립출판과 견줘 어느 쪽이 서점에 유용한가



“우리가 중요하게 보는 건 출판사가 아니라 책의 내용과 작가인데요, 막상 대부분은 독립출판사 책들이죠. (이유가?) 작품들이 더 흥미로우니까요. 그 가운데서도 사이퍼 프레스를 제일 좋아해요.”



사이퍼 프레스는 올해로 설립 5년차를 맞은 런던 기반의 엘지비티큐 전문 독립출판사다. “꽤 있던 퀴어 출판사들이 대부분 사라져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출판 경력 15년차 때로, 2000년대가 통으로 대표 잭 톰슨의 출판 생애다. 지난 7월 말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톰슨은 3가지를 신생 출판사의 난관으로 꼽았다. 영국 정부(예술위)의 보조금 탈락, 주류 신문의 서평 축소, 종잇값·인쇄비용 상승으로 인한 마진 감소. 두명이 파트타임으로 전 공정을 나눠 회사를 운영하며 “막 출발한 작은 조직으로 작가와 책의 가시성 확보가 주된 어려움”이란 그의 말에 다만 비관이 낄 틈은 없어 보인다. “서점과 독자, 업계로부터 압도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다”는 톰슨의 말마따나, 사이퍼 프레스를 첫손에 꼽는 서점을 먼 도시에서도 만나게 되니 말이다.



독립출판과 동네 서점의 동반 관계는 두루 확인된다.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의 대표 크리스틴 비다 알파로도 한겨레에 “독립서점이 우리의 가장 주요한 세일즈 창구”라며 “영국은 독립출판사 책을 앞세우는 독립서점이 많아 운이 좋은 편이지만, 여전히 시장과 언론에서 주류는 빅5의 책들이라 (독립서점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피츠카랄도의 소설 ‘폰드’(Pond)는 올해 한 독립서점이 ‘추천 목록’에 포함시키면서 인기 서적의 반열에 올랐다. 해안가 사는 한 여성의 내면을 실험적 문체로 드러낸 영국 작가 클레어루이즈 베넷(아일랜드 거주)의 작품이다. 소설가 성해나의 단편 ‘혼모노’, 김금희의 에세이 ‘식물적 낙관’ 등을 번역 또는 번역 중인 한-영 번역가 클레어 리처즈는 한겨레에 “번역가 시선으로 봤을 때”도 “독립출판사와 독립서점이 해외 문학을 영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말하자면 서지 다양성(Bibliodiversity) 강화에 많은 노력과 역할을 한다”며 “독립출판사가 대중적이지 않고 조금 더 ‘리스키’(risky, 위험)한 작품을 출간하는 경향 덕분이다”라고 말한다.



지난 7월30일 영국 런던 주영한국문화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독립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의 대표 크리스틴 비다 알파로(왼쪽). 그는 최근 안톤 허의 번역으로 출간한 박서련 작가의 ‘체공녀 강주룡’을 “올해 기대작”이라고 말했다. 2025 에든버러 국제 도서 축제에 지난 8월12일 연사로 참여한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오른쪽 위 사진 왼쪽)은 한겨레에 “한국 웹 소설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며 “케이팝, 드라마, 문학, 미술이 서로 맞물려 영국 대중의 호응을 엄청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관련 서적들을 눈에 띄게 ‘큐레이션’한 런던의 독립서점 ‘벌리 피셔 북스’(오른쪽 아래). 이 서점 대표는 독립출판사도 운영한다. 임인택 기자

지난 7월30일 영국 런던 주영한국문화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독립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의 대표 크리스틴 비다 알파로(왼쪽). 그는 최근 안톤 허의 번역으로 출간한 박서련 작가의 ‘체공녀 강주룡’을 “올해 기대작”이라고 말했다. 2025 에든버러 국제 도서 축제에 지난 8월12일 연사로 참여한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오른쪽 위 사진 왼쪽)은 한겨레에 “한국 웹 소설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며 “케이팝, 드라마, 문학, 미술이 서로 맞물려 영국 대중의 호응을 엄청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관련 서적들을 눈에 띄게 ‘큐레이션’한 런던의 독립서점 ‘벌리 피셔 북스’(오른쪽 아래). 이 서점 대표는 독립출판사도 운영한다. 임인택 기자


핀은 “출판사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면서도 아끼는 출판사들의 이름을 마구 쏟아냈다. “나이트보트, 아스널 펄프 프레스도 좋고… 아, 글래스고에 있는 스팸 포이트리 프레스, 여긴 작가들 70%가 퀴어예요. 그리고 이 지역 잡지들도 있죠.”



“90년대까지 적지 않던 엘지비티 출판사들이 2000년대 사라졌”다는 출판계 잭 톰슨의 말은 “최근 몇년 퀴어 책이 잘 팔려서 대형 출판사도 적극 나섰는데 정치 보수화로 열기가 식을 조짐이 있다”는 서점계 핀의 말과 맥을 같이한다. 하나가 유행성이고 하나가 정체성이다.



“장애인 퀴어 커플이 코로나 예방수칙을 준수하는 가정 청소원을 찾”는 오래된 쪽지와 “젠더는 저마다 배운 언어로 짓는 시다”라는 마르크시스트 트랜스젠더 작가 레슬리 파인버그(1949–2014)의 글귀가 ‘카테고리 이즈 북스’의 한편에서 또 시선을 붙들었다. 존재를 규명하고, 존재를 살리는 말들 같았다. 10평도 되지 않을 작은 서점이었다.



글래스고·런던/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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