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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의 마술사·얼굴 없는 남자 … 물의 도시에서 맞붙다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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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의 마술사·얼굴 없는 남자 … 물의 도시에서 맞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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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 컬렉션 푼타 델라 도가나의 전경. 좌측의 돔 건물은 살루테 성당. UNSPLASH

피노 컬렉션 푼타 델라 도가나의 전경. 좌측의 돔 건물은 살루테 성당. UNSPLASH


베네치아는 현대미술의 거대한 '쇼룸'이다. 1895년 첫 막을 올린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130년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베네치아 미술의 아름다움은 축적된 시간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제국의 폐허 속에 고대 위용을 봉인 중인 로마, 르네상스의 빛과 그림자를 보존한 피렌체, 패션과 디자인의 언어로 세계를 재단하는 밀라노와 달리 베네치아는 '현대미술의 실험장'으로서 끝없이 늘 도시 자신을 새롭게 개조해왔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 세워진 물의 도시, 실재보다 환영에 가깝게 느껴지는 몽환적인 무대에서 베네치아의 현대미술은 끝없는 변주를 개진해왔고, 그로 인한 미학적 파문 속으로 방문자의 시선과 반응이 응축됐다. 예술의 욕망과 꿈이 현전하는 베네치아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영원한 실험'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중이다.

그 가운데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의 '비에이라 다 실바 회고전-공간의 해부학'과 피노 컬렉션 푼타 델라 도가나의 '토마스 쉬테 개인전'은 베네치아가 지닌 실험장(場)의 성격을 가장 농밀하게 체감하게 해준다. 세계 최정상 미술관인 두 곳을 최근 방문해 두 전시를 살펴봤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입구.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입구.


작은 사각형, 세계를 비추는 거울

베네치아섬 중심인 산 마르코 광장에서 바포레토(수상버스) 1번을 타고 10분 남짓 이동한 뒤 살루테역에서 하선해 3분만 걸으면 검은 글씨로 'Peggy Guggenheim Collection'이 음각된 석조 대문이 나타난다. 외양은 작지만 이곳의 숭고성은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인데, 그 이유는 현대미술 방향성을 바꿔놓은 20세기 최고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정신성을 추념하는 곳이어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선 현재 20세기 서정적 추상의 거장 비에이라 다 실바(1908~1992)를 조명 중이다.

실바가 누구인가? 흔히 그는 '격자(grid)의 마술사'로 불린다. 실바가 캔버스에 그은 선과 선은 서로 교차하고 갈라지면서 작은 사각형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는데, 몇 개의 직선과 그로 인한 교차점에서 탄생하는 격자무늬는 실바 자신과, 그가 속했던 세계를 재해석했다. '공간의 해부학'이라고 명명된 실바의 이번 전시에선 그가 생전에 남긴 한마디가 관람객을 캔버스 공간 안으로 초대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비에이라 다 실바 'The Library'(1949).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비에이라 다 실바 'The Library'(1949).


'난 내가 본 적이 없는 공간을 걷는다. 난 그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다.'

전시장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Red Chess Board or Chess Player'와 'Ballet or The Harlequins'다. 전자는 두 명의 체스 플레이어가 탁자에 마주 앉은 모습이고, 또 하나는 발레리나들이 우아한 포즈를 취한 실루엣 형상이다. 이들의 형체는 '실재하는 것의 사실적인 묘사'에 있지 않다. 캔버스 속 인물들이 위치한 공간의 바닥, 벽면, 체스판, 플레이어와 무용수들은 모두 '격자무늬' 형태로 일체화돼 있기 때문이다. 수천수만 개의 작은 격자는 각각의 형태로 '공간'을 창조하는데, 이 때문에 격자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작은 붓놀림이 모여 환각적인 공간을 창조한 것. 실바의 그림은 삶(生)이라는 100년짜리 게임, 한판 춤에 불과한 무희로서의 인생을 응축해낸다.

실바의 개인사는 몇몇 작품의 온전한 이해를 돕는다. 리스본 출신으로 1920년대에 예술 공부를 위해 파리로 건너갔던 실바는 그곳에서 운명의 동반자인 세네시 아르파드(1897~1985)와 조우한다. 둘은 일생을 함께하게 되는데, 당시만 해도 아직 명성을 얻기 전이었고,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를 휘감는 전운 속에서 다시 브라질로 이주해야 했다. 세네시의 군 징집을 우려해서였다.


세네시와 함께 리우데자네이루에 머물던 실바는 전쟁 속의 인간을 화폭에 담는다. 캔버스 속 인간은 하나같이 생존을 갈망하고, 실존을 희구하는 자세였다. 실바는 이러한 감정을 자신의 고유한 화풍, 격자무늬로 남아냈다. 실바의 회화 'The Disaster' 연작은 그래서인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린 인간의 절규와 비명이 들려올 듯하다. 거리에 운집해 한쪽을 바라보고 있는 'The Disaster'(1943년)가 특히 그렇다. 표정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격자 형태로 그린 작품인데, 그들은 정지한 상태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나약한 인간의 공포가 여실히 느껴진다. 그 옆으로 추상성이 더 두드러지는 'The Disaster'(1942년)는 화풍 전체가 혼돈 그 자체다. 분절된 격자 속에 박제된 인간 군상은, 해체되고 분열된 당대 세계의 초상처럼 보인다. 'Tragic Maritime Story or Shipwreck'(1943년)은 피란선에 탑승한 인물들을 조명했다. 저 배를 둘러싼 거대한 파도와 파도 속에서 몰려드는 인간의 형체는 전시 피란길에 동행 중인 죽은 자의 정령처럼 감각된다.

가까스로 전쟁이 끝난 뒤 실바의 캔버스 속 선(線)은 곡선에서 직선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The Library'(1949년) 'Paris Celebration'(1950년) 'Saint-Lazare Station'(1949년) 등의 회화에서 실바는 파리를 흐릿한 감각으로 담아냈다. 등장인물들은 직선으로 설계된 새로운 공간에서 이동 중인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개인과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집단적 일원으로서 느껴진다. 저들은 익명 뒤에 속해 있지만, 그 익명성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 전시된 실바의 후기작은 그가 일생을 걸고 걸어갔던 실험적 여정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적인 공간, 전쟁의 폐허, 도시의 수직성·수평성을 탐색하던 실바의 시선이 마침내 '미로'라는 형식으로 귀결돼서다. 격자 사각형의 패턴은 유지되지만, 몇 줄만의 선을 교차시키면서 전혀 새로운 공간이 구축되고 있다. '미로'를 뜻하는 제목의 'Maze'(1975년)는 실바가 '격자'로 이루고자 했던 탐구정신의 극한과 같다. 어두운 색조의 사각형이 적어도 수만 개쯤 그려진 이 작품은 캔버스의 2차원과 우리가 살아내는 3차원의 시공간을 초월해버리는 압도적 공간감으로 채워졌다. 직접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정동(情動)이 가득하다.

실바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작은 사각형으로 직조된 무한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실바가 한 점씩 그려낸 작은 사각형의 빛은 세계와 관객을 삼키는 중인 미학적인 그물과 같다.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의 실바 전시는 9월 15일로 종료되지만, 이 전시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이어진다. 10월 16일 개막 후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리니 스페인 방문객이라면 꼭 봐야 할 귀한 전시다.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토마스 쉬테 '바람 속의 남자 1·2·3'(2018).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토마스 쉬테 '바람 속의 남자 1·2·3'(2018).


자신의 얼굴을 손에 쥔 소년

현재 베네치아 곳곳의 벽면에선 피노 컬렉션 푼타 델라 도가나의 '토마스 쉬테 개인전' 포스터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베네치아 예술의 순례자들은 이 때문에 쉬테의 자장(磁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바포레토 탑승구에도, 붉은 벽돌 벽면에도 포스터가 가득해서다. 실바 전시에 이어 푼타 델라 도가나의 조각가 토마스 쉬테 개인전도 실험성으로 가득한 전시다.

푼타 델라 도가나로 입장하기 전, 우선 이 건물을 둘러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베네치아 대운하와 주데카 운하가 만나는 '삼각지점'에 위치한 푼타 델라 도가나는, 당초 베네치아로 입항하는 선박에 세금을 매기던 세관으로 쓰였다. 'Punta della Dogana'도 '세관이 있는 뾰족한 곶(岬)'을 뜻한다. 방치됐던 이 낡은 건물은 구찌·발렌시아가 등 세계적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의 창업자이자 현대미술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가 2009년 안도 다다오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장소다. 고풍스러운 외관, 절제된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건물은 스무 곳이 넘는 쇼룸으로 구성돼 있고, '화이트큐브'가 아닌 스무 곳의 쇼룸은 작품과 길항하며 감상의 풍미를 더한다.

베네치아 명물 곤돌라가 수없이 오가는 운하를 바라보며 푼타 델라 도가나 정문을 통과하면 토마스 쉬테의 4m 크기 청동상 석 점이 위용을 드러낸다. 연작 청동상 '바람 속의 남자 1·2·3'(2018년)이다. 거대한 덩치는 압도적이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저들이 고통 속에 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 발목이 '진흙 아래' 잠겨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쉬테는 '작은 인형을 똑바로 세우려다가 접착제를 떨어뜨렸고, 그 접착제가 인형의 종아리까지 넘쳐 받침대에 붙어버렸다'고 한다. 쉬테에게 이건 해프닝이 아닌 인간 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으로 다가왔다. 한자리에 서서 옴짝달싹 못 하는 세 인간,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한 채 절규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 중인 세 청동상은 어딘가에 속박된 존재인 인간 실존의 무게를 은유해낸다.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토마스 쉬테 '빅 도펠코프'(2016).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토마스 쉬테 '빅 도펠코프'(2016).


'진흙에 발이 묶인 존재'라는 모티프는 그 옆의 청동상 '얼굴 없는 남자'(2018년)에서도 이어진다. 표정이 두드러지는 세 '덩치'들과 달리 이 작품 속 남자는 위용이 당당하다. 특히 그의 얼굴은 '수직' 방향으로 잘렸고, '잘린' 얼굴은 그의 오른손에 쥐인 상태다. 공백으로 남겨진 얼굴, 그것은 정체성을 삭제한다. 정체성(얼굴)을 망실했지만 부재의 흔적마저 손에 붙드는 모순이 응축된 작품이다. 위엄에 가득한 외양과 달리 결국 무(無)가 돌아가버리고 마는 인간의 모순까지 담아낸 듯하다.

다음 전시실로 건너가면 거대한 두상 4점이 사방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자세로 전시돼 있다. 그들은 모두 찡그린 표정, 자못 교활해 보이기까지 한다. '찡그린 표정의, 교활해 보이는 남성의 얼굴'은 쉬테의 시그니처 작품으로 통한다. 미술관 측 설명에 따르면 저 남성들의 표정은 정계와 재계의 유명인들이 부패 혐의가 드러나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순간의 표정을 풍자한 것이다.

쉬테의 '찡그린 얼굴' 조각상은 푼타 델라 도가나 전시에서 여러 형태로 변주되는데, 특수 세라믹 또는 베네치아 특산물인 유리로 제작됐다. 푼타 델라 도가나의 쉬테 개인전은 내년 4월 1일까지 열린다.

[베네치아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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