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앙카 보스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예술 의미 찾으려 미술계 침투
갤러리 보조·큐레이터·경비원까지
경험하며 예술계 민낯 파헤쳐
"대중성 시시" "쉬운 예술은 멍청"
난해한 표현 즐기고 황금인맥 장악
예술 어디에나 존재, 기준 유동적
많은 작품 자신 감각으로 오래 느껴야
예술 의미 찾으려 미술계 침투
갤러리 보조·큐레이터·경비원까지
경험하며 예술계 민낯 파헤쳐
"대중성 시시" "쉬운 예술은 멍청"
난해한 표현 즐기고 황금인맥 장악
예술 어디에나 존재, 기준 유동적
많은 작품 자신 감각으로 오래 느껴야
예술 작품 앞에서 누군가는 "도대체 뭘 그린 거지? 이게 예술이라고?"라는 의문을 품는다. 이후의 반응은 두 가지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억지로 수긍하거나, "예술은 너무 심오하다"며 거리를 두는 것.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다른 길을 택한다. "왜 요즘 예술은 대중을 외면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술계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무엇이 예술이며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나뉘는가'를 직접 탐구한다.
저널리스트 비앙카 보스커는 미국 고급 와인 산업의 이면을 고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미술계를 취재한다. "무명 예술가가 무급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면 100명이 몰리고, 갤러리 어시스턴트 자리에는 그 세 배가 지원한다"는 치열한 업계에서, 그는 "스파이 아니냐"는 의심을 뚫고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에 어렵게 들어가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첫 직장의 고용주 잭은 미술을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기며 "대중성은 시시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부러 난해한 '인터내셔널 미술 영어'를 구사했다. '꽃으로 만든 얼룩'을 "모든 기호가 유기재료로 제작됐다"고 표현하고, "지표성과 성상성의 힘이 소환된다" 같은 모호한 문장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미술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르는 일종의 '배제의 암호'였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
저널리스트 비앙카 보스커는 미국 고급 와인 산업의 이면을 고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미술계를 취재한다. "무명 예술가가 무급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면 100명이 몰리고, 갤러리 어시스턴트 자리에는 그 세 배가 지원한다"는 치열한 업계에서, 그는 "스파이 아니냐"는 의심을 뚫고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에 어렵게 들어가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첫 직장의 고용주 잭은 미술을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기며 "대중성은 시시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부러 난해한 '인터내셔널 미술 영어'를 구사했다. '꽃으로 만든 얼룩'을 "모든 기호가 유기재료로 제작됐다"고 표현하고, "지표성과 성상성의 힘이 소환된다" 같은 모호한 문장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미술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르는 일종의 '배제의 암호'였다.
이 세계에서 성공의 기준은 대중적 인기보다 '영향력 있는 집단의 인정'이었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에 붙는 맥락과 이름값이 더 중요한 셈이다. "이 판에서는 영향력 있는 내부자가 미술이라고 부르면 그것이 곧 미술이었다."
미술계에서 말하는 맥락은 단순히 작품의 시각적 배경이 아니다. 돈에 얽매이지 않는 '황금 탯줄'을 지닌 채, 거물 작가와 메이저 큐레이터를 오프닝 뒤풀이에 불러낼 수 있는 인맥이 핵심 자산이었다. 잭은 "미술계가 지금처럼 돌아가는 건 아무나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바로 그 점이 흥미와 매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예술을 더 쉽게 만들자"는 말은 곧 "예술을 멍청하게 만들자"와 다름없었다.
저자는 또 19세기까지 글로벌 예술의 기준은 프랑스 미술계 유명인의 작품 구매 여부였고, 그 흐름을 따라 구매하는 것이 주요한 예술 활동이었다는 점을 짚는다. 근대 아트바젤의 경우 VIP 등급에 따라 입장 시간이 달라지고, VIP는 충성도·구매 이력·거주 지역 등에 따라 갤러리가 책정한다는 사실도 전한다.
예술계는 돈을 저급하게 여기는 부류와 시장성을 철저히 따지는 부류로 나뉜다. 두 번째 갤러리에서 만난 엘리자베스는 철저히 후자였다. 뛰어난 작가라 해도 운반비가 지나치게 높거나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좋지 않은 작가'로 간주했다.
결국 저자는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하루 한 시간씩 같은 작품을 오래 감상한 끝에, 예술의 가치는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다. 미술 감상 훈련을 받은 의대생은 환자를 더 세심히 관찰했고, 뉴욕 경찰·FBI·미 해군 특수부대도 예술을 통해 '보는 법'을 훈련한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느리게, 오직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 감상하라고 권한다. "무엇이 예술인가, 좋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 기준은 유동적이라고 답한다. 제도적 문턱을 넘어 삶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예술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며, 삶을 음미하고 창조하는 연습이라고 강조한다.
갤러리 보조에서 큐레이터, 미술관 경비원까지 종횡무진하며 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여정은 '쉽게 쓰인 책이 아니다'라는 찬사를 이끌어낸다. 그 도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강렬한 자극을 받고, 체험적 서술과 유머러스한 표현은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한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 비앙카 보스커 지음 | 오윤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480쪽 | 2만3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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