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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만들고 ‘사랑이 가장 센 고발 수단’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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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만들고 ‘사랑이 가장 센 고발 수단’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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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이 재단 사무실 앞의 이태석 신부상 옆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아리 객원기자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이 재단 사무실 앞의 이태석 신부상 옆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아리 객원기자


15년 전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 ‘울지마 톤즈’는 여러 사람의 삶을 바꾸었다. 신부의 제자들이 신부의 뒤를 잇기 위해 의대·간호대에 진학했고, 한국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한 축구 감독은 톤즈로 날아가 아이들을 축구 선수로 키워내고 있다. 하지만 삶이 가장 크게 변한 사람은 ‘울지마 톤즈’를 만든 구수환 전 한국방송(KBS) 피디다. 그는 이후에도 후속 다큐를 만들었고, 현재는 이태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태석 신부 선종 15주년을 맞아 더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구수환 이사장을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에도 남수단 학생들의 교육 지원을 위해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이태석 정신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믿음과 실천”이라며 “이태석 정신을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재단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태석재단은 청소년들을 나눔과 봉사의 리더로 성장시키는 ‘이태석 리더십스쿨’을 운영한다. 사진은 리더십스쿨에 참여한 학생들이 남수단에서 자원봉사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이태석재단 제공

이태석재단은 청소년들을 나눔과 봉사의 리더로 성장시키는 ‘이태석 리더십스쿨’을 운영한다. 사진은 리더십스쿨에 참여한 학생들이 남수단에서 자원봉사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이태석재단 제공


그는 ‘추적 60분’ 등 고발 프로그램만 10년 이상 제작한 피디였다. 온갖 비리와 부정을 파헤치며 소송도 10여차례 당했고 동티모르,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분쟁지역을 취재하다 레바논 기반의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에 납치되는 위험도 겪었다.



“비슷한 사건이 3∼4년마다 반복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언론이 고발하면 대책이 세워지지만 결국 흐지부지되어 다시 같은 사건이 터지죠. 아무리 고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회의감이 커져 사표를 낼까 하던 참에 이태석 신부의 삶을 만나게 됐어요.”



가난한 집안의 의사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로 아프리카에 지원한 사제였던 이태석 신부는 전쟁 중이던 남수단 톤즈에 진료실을 열어 하루에 수백명의 사람들을 치료하고 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또 각자 고립돼 살던 한센인들을 모아 마을을 만든 뒤 방문 진료를 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음악과 악기를 가르쳐 남수단 최초 브라스밴드를 만들기도 했다.



“저는 사실 ‘울지마 톤즈’를 고발 다큐로 만들었어요. 우리 사회가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올인하는 사회잖아요.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만들려고 하고요. 이 신부는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갔어요. 신부의 어머님도 결국 자식의 뜻을 존중했죠. 다큐를 만들 당시는 이명박 정권 시절로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모두가 성공을 향해서만 달릴 때여서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고 싶었어요.”



원래 방송용이었던 다큐는 영화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해외 언론이 주목하면서 북미, 유럽, 교황청에서도 상영됐다. “세상을 바꾸려고 고발할 때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더니 신부님의 삶을 보여주자 모두 울고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발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걸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드는 도구로 쓸 수 있겠다 싶어 전국에 강연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죠.”



그는 매년 160회 정도 강연을 한다. 초·중·고교부터 소년원, 교도소, 군부대까지 다닌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반응이 좋아요. 강연을 하고 나면 저를 안아보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고, 교단에 회의감을 느끼는 선생님 중에는 ‘사랑을 놓지 않고 다시 가보겠다’고 다짐하는 경우도 있죠.”



‘울지마 톤즈’가 이 신부의 숭고한 삶을 다룬다면, 2020년 상연된 ‘부활’은 신부가 톤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남수단 교과서에 신부의 이야기가 실렸고, 40∼50명의 아이들이 의대생이 되어 신부가 돌보던 한센인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15년 전 이태석 신부 선종 이후
고인 삶 다룬 다큐 만들어 주목
피디로 10년 이상 고발프로 연출
2020년 이사장 맡고 후속 다큐도
“이태석 정신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행복해지는 게 재단 목표”





남수단 교육 지원 등 인정받아
재단, ‘유엔 엔지오’로 지정돼







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이 신부의 형인 이태영 신부가 맡았다. 이태영 신부가 2019년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구수환 피디를 불러 두가지를 부탁했다.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를 기념해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과 재단을 맡아달라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다큐가 ‘부활’이었고, 2020년부터 그가 이사장을 맡았다.



선종 15주년인 올해 가장 뜻깊은 성과는 재단이 유엔 엔지오로 공식 지정됐다는 것이다. 남수단 교육 지원, 한센인 지원, 우크라이나 지원 등이 인정받았다. 오는 10월부터는 남수단 의대·간호대·농대 학생 60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원광대에서 수업을 받게 할 예정이다.



국내 아이들을 봉사와 나눔의 리더로 성장시키는 일도 재단의 중요한 과업이다. 재단이 운영하는 ‘이태석 리더십스쿨’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타심과 공감 능력, 경청 역량을 키우는 수업을 하며, 마지막에는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 스쿨을 수료한 학생을 상대로는 스웨덴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리더십스쿨’도 운영한다. 지금까지 180여명이 리더십스쿨을 거쳐갔다. “저는 이태석 신부를 희생적인 사제가 아니라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리더로 봅니다. 고발 프로그램 피디로 일하면서 리더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 있었죠.”



이달부터는 교원대에서 ‘세계가 주목한 이태석 리더십’이라는 3학점 교과목이 시작된다. 학생들 반응이 좋으면, 다른 대학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유엔 엔지오로서 국제 단체와 교류가 많은 만큼, 해외에서도 이태석 정신을 널리 알리고, 리더십스쿨 학생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다큐 제작과 함께 유럽, 아시아, 남미 등에서 다큐 ‘부활’의 순회 상연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놀랍게도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사찰에서도 이 신부 영상을 틀고 강연을 한다. 사람들은 ‘불교 신자가 왜 가톨릭 사제의 삶에 그렇게 몰두하냐’고 묻기도 하고 ‘이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제안도 많이 한다. “제가 가톨릭 신자였다면 제가 하는 일이 단순히 교세 확장을 위한 전도로만 보였을 겁니다. 불교 신자니까 그런 오해를 피할 수 있었죠. 신부님의 삶은 특정 종교보다 인간의 마지막 희망인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 하늘에서 이태석 신부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죠. 덕분에 이제 숨 쉬듯이 살게 됐거든요. 언론인으로 살 때는 늘 싸움의 연속이었고 좌절감과 우울감이 많았어요. 신부님을 만나고선 제 삶이 가식적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신부님에 비하면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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