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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웃는 꽃 이면의 씁쓸함…SNS에 빠진 현대인들 같아

매일경제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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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웃는 꽃 이면의 씁쓸함…SNS에 빠진 현대인들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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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안, 日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
서울 APMA 캐비닛서 개최
회화·조각 등 신작 10여점


무라카미 다카시 ‘Summer Vacation Flowers under the Golden Sky’(2025). 가고시안

무라카미 다카시 ‘Summer Vacation Flowers under the Golden Sky’(2025). 가고시안


금빛 하늘 아래 만개한 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꽃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고, 일부는 산들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듯하다. 일본의 세계적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금박의 배경에 자연과 설화를 그렸던 에도시대 천재 화가 오가타 고린(1658~1716)의 작품을 오마주한 ‘Summer Vacation Flowers under the Golden Sky’(2025)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금박의 화면에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해골 문양이 가득하다. 이는 오바타 고린의 원 작업에서 금박이 벗겨지거나 손상된 부분을 재해석한 것이다. 활짝 웃는 꽃들은 천진난만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지만, 작가는 해골을 통해 그 화려함 이면에 있는 현대사회의 자멸적인 소비문화를 드러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이 오는 10월 11일까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의 프로젝트 공간 캐비닛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2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개인전으로, 무라카미의 서울 개인전은 2013년 옛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최된 이후 12년 만이다. 작가 특유의 ‘활짝 웃는 꽃’을 모티브로 한 회화, 조각 등 신작 10여 점을 펼친다.

전시 제목의 ‘여름방학’과 관련해 무라카미는 “일본에서는 여름방학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주제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보더라도 여름방학의 시작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고 여름방학이 끝나면서 무언가가 끝이 난다”며 “오랜만에 서울에서 여는 개인전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5년부터 그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해온 활짝 웃는 꽃에는 작가의 ‘슈퍼플랫(Superflat)’ 철학이 담겨 있다. 슈퍼플랫은 ‘평평한’ 이차원적 이미지를 통해 고급과 저속의 구분이 거의 없는 전후 일본사회의 천박한 문화와 공허한 소비주의, 성적 페티시즘, 성장에 대한 공포 등을 비판하기 위해 무라카미가 약 20년 전 창안한 미술사조다. 일본의 전통회화 양식인 니혼가와 만화·애니메이션에서 모두 영감을 받았다. 강박적인 성향의 서브 컬처를 일컫는 ‘오타쿠’와 일본어로 귀엽다는 의미의 ‘카와이’ 감성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캐비닛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캐비닛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캐비닛 전시장 전경. 가고시안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캐비닛 전시장 전경. 가고시안


‘Hello Flowerian’(2024)이라는 동명의 두 조각 작품도 마찬가지다. 활짝 웃는 꽃 얼굴을 한 작은 인물이 좌대 위에 서 있는 형상인데, 겉모습은 밝고 명랑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후 일본이 겪었던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불확실성을 미숙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슈퍼플랫과 관련해 무라카미는 “오늘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빠져 있는 현대인의 일상을 보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슈퍼플랫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인공지능(AI)의 등장도 그렇고, 평평한(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전시작인 ‘Tachiaoi-zu’(2025)는 금박 배경에 붉은색과 분홍색, 흰색의 접시꽃을 그린 오가타 고린의 ‘국화도’ 병풍을 무라카미 특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닉 시무노빅 갤러리 가고시안 아시아 총괄 디렉터는 “무라카미는 패션, 음악처럼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현대미술의 최전방에 있으면서도 일본의 전통과 역사를 잊지 않고 중간중간 이를 반영한 새로운 길을 해쳐나가는 작가”라며 “일례로 금박은 일본 미술사에서 굉장히 자주 사용됐던 재료로, 일본 교토에서는 어두컴컴한 집 안을 환히 밝히기 위해 금박으로 완성된 그림을 걸곤 했다”고 전했다.

무라카미는 일본 도쿄예술대 일본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부터 서구 미술을 무분별하게 모방하는 일본 미술계를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현재는 일본 갤러리 카이카이키키 대표로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작가 육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순수 미술과 상업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며 루이비통, 돔페리뇽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해왔고 한국에서는 K팝 걸그룹 블랙핑크, 뉴진스 등과 협업한 바 있다. 특히 무라카미의 활짝 웃는 꽃은 지난해 뉴진스가 발표한 새 앨범 ‘Supernatural’의 키 비주얼로 확장돼 큰 화제를 모았다.

전시장에 걸린 무라카미 다카시의 ‘Tachiaoi-zu’(2025). 에도시대 천재 화가 오가타 고린의 ‘국화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연합뉴스

전시장에 걸린 무라카미 다카시의 ‘Tachiaoi-zu’(2025). 에도시대 천재 화가 오가타 고린의 ‘국화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연합뉴스


일본의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캐비닛 전시장에 걸린 작품 앞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활짝 웃는 꽃’ 모자를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일본의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캐비닛 전시장에 걸린 작품 앞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활짝 웃는 꽃’ 모자를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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