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부, '피싱과의 전쟁' 선포…사각지대 여전
`보이스피싱`만 지급정지…좁은 범위에 피해자 울분
피싱범들이 사각지대 이용해 증거 삭제하기도
"제도가 수법 못 따라가…시급히 관련법 제정해야"
`보이스피싱`만 지급정지…좁은 범위에 피해자 울분
피싱범들이 사각지대 이용해 증거 삭제하기도
"제도가 수법 못 따라가…시급히 관련법 제정해야"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박원주 수습기자] 범정부 차원에서 보이스피싱(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법 사각지대에선 여전히 시민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피싱 범죄가 고도화하면서 전통적인 방식 외 수법의 사기가 범람하고 있는데 이 경우 계좌 동결과 같은 기초적인 조치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범죄 조직들이 이러한 사각지대를 악용해 수사망을 피해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때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내 돈은 그럼 어떻게 찾나요”…까다로운 지급정지 규정
대구에 사는 배모(30)씨는 지난 7월 온라인게임 게임머니를 구매하다가 50만원가량 사기를 당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날 오전 9시가 되자마자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배씨가 할 수 있던 건 상담과 서류 확인 등에 그칠 뿐이었다. 게임머니 사기피해엔 계좌 동결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관은 “보이스피싱이 아니면 지급정지 신청이 안 된다”고 했고 결국 배씨는 돈을 되찾을 수 없었다.
배씨의 사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이유는 해당 범죄가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기이용계좌 지급 정지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해당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최근 유행하는 투자리딩방과 로맨스스캠, 노쇼사기 등 새로운 유형의 사기 는 ‘다만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한다’는 규정에 따라 ‘대가성’이 있는 일반 사기로 분류되는 탓에 해당 법으로 보호받을 수가 없다.
(사진=챗GPT) |
“내 돈은 그럼 어떻게 찾나요”…까다로운 지급정지 규정
대구에 사는 배모(30)씨는 지난 7월 온라인게임 게임머니를 구매하다가 50만원가량 사기를 당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날 오전 9시가 되자마자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배씨가 할 수 있던 건 상담과 서류 확인 등에 그칠 뿐이었다. 게임머니 사기피해엔 계좌 동결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관은 “보이스피싱이 아니면 지급정지 신청이 안 된다”고 했고 결국 배씨는 돈을 되찾을 수 없었다.
배씨의 사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이유는 해당 범죄가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기이용계좌 지급 정지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해당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최근 유행하는 투자리딩방과 로맨스스캠, 노쇼사기 등 새로운 유형의 사기 는 ‘다만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한다’는 규정에 따라 ‘대가성’이 있는 일반 사기로 분류되는 탓에 해당 법으로 보호받을 수가 없다.
이러한 사각지대가 공공연하게 알려지면서 범죄 조직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50대 박모씨는 지난 6월말 리딩방 사기로 1억 5000만원을 잃었다. 이후 해당 일당이 만든 허위 구제 사이트에서 상담을 받게 됐는데 이들은 “경찰서에 가서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해야 지급정지를 시켜준다. 보이스피싱은 전화로만 이뤄지는 범죄이니 남아 있는 증거자료를 다 지워라”라고 했다. 돈을 돌려받으려면 증거를 지워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박씨는 이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해당 계좌에서는 이미 돈이 다 빠져나간 후였고 리딩방 사기를 입증할 증거도 없어진 상황이 됐다.
보이스피싱 피해일 경우에만 계좌 동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다른 투자 사기 피해자에게 허위 신고를 유도한 법무법인이 입건되기도 했다. 이 법무법인 직원과 사설탐정 업체 직원들은 지난해 5월 사기 피해자 600여명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유도한 혐의를 받는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
관계당국도 혼선…“다중피해사기방지법 제정해야”
관계당국은 이에 대한 대응하고 있긴 하지만 혼선을 빚는 모양새다. 서울 한 경찰서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하는 B경위는 “지난해 12월 가짜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사용한 사기 범죄도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된다는 판례가 나온 후로 신종사기를 수사할 때 어떤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지 혼란이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가 생긴 이후로 불법 리딩방 사기 등에도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를 진행하라는 내용의 가이드북을 만들어 금융권에 배포했다”면서도 “다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있는 입법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피싱 근절을 위한 범정부 통합대응단을 설치한 만큼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법이 미비하다면 특단의 대책도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등 유관부처는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다중피해사기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은행의 지급정지 조치 등에 경찰의 공권력이 개입해 사기 의심 계좌를 차단하는 등 피해예방에 중점을 둔 법이다.
경찰 관계자는 “다중피해사기라고 부르는 그런 사기 범행에 대해 전국에서 수집되는 사건을 다 살펴보고 통합대응할 것”이라며 “다른 조직적 사기에 대해서도 지급정지나 번호정지 등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제도가 신종범행 수법을 따라가지 못해 ‘입법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허위 신고를 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중피해사기방지법 등 관련 법안이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