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지난 4일(현지시각) 조지아주의 현대차·엘지(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300여명이나 되는 한국인을 무더기 구금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공장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적법한 비자를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비즈니스 목적(상용)으로 단기간 방문할 때 발급받는 비이민 단기 상용(B-1)비자나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발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선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받아야 하는데, 발급에 수개월이나 걸리고 그마저도 개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인력 파견이 급해 관행적으로 이런 방식을 통해 인력을 수급해왔던 한국 기업들의 발등엔 당장 불이 떨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7일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직원 무더기 구금 사태 원인으로 “전문직 비자 발급이 어려워 기업들이 관행처럼 우회로를 택해 왔다”는 점을 들었다. 상당수 기업들은 미국에 직원을 출장 보낼 때 비이민 비자인 단기 상용(B-1) 비자나 최대 90일 단기 관광·출장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 주는 전자여행허가(ESTA) 제도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비-1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하더라도 미국 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회의 참석이나 계약 협상, 컨퍼런스 참가 등으로 제한된다.
이번에 단속을 진행한 이민 당국은 우리 기업의 이런 관행을 문제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1 비자나 전자여행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들이 미국 현지 공장이나 사무소에서 일하는 것을,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단속 과정에서 구금된 한국인 직원들에 대해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은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 때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의 폭증하는 대미 투자와 맞물려 이런 관행이 어느 정도 묵인돼 왔지만, 반이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문제는, 미국 현지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 전문직 취업 비자(H-1B) 발급 문턱이 높다는 것이다. 전문직 취업비자의 쿼터는 매년 8만5000여개로 제한돼 경쟁률이 높다. 2025년 회계연도를 보면, 약 47만명이 신청했고, 이마저도 추첨식이다. 또 해당 비자는 미국 회사가 스폰서가 되어 신청해 줘야 하며, 전문직 전용 비자라서 학사 학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 설령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발급까지 최소 6개월이나 소요된다.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적시에 파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실제로 미 이민국(USCIS)은 지난달 이미 2026 회계연도에 발급될 전문직 취업 비자 쿼터가 모두 소진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2006~2007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전문직 비자(E-4) 신설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미국 의회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국 전문직이 대량으로 유입되면 미국인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결국 협정문에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호주는 연간 1만500명, 싱가포르는 5400명, 칠레는 1400명의 쿼터를 확보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미투자를 확대하라는 상황에 기업들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며 “정부는 미국 쪽에 우리 입장을 최대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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