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엘러벨에 있는 현대차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알리는 안내판. 엘러벨/김원철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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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각)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미국 ‘디레이 제임스 교정시설’ 주변엔 인기척도 없었다. 휴대전화 신호도 간간이 끊어지는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 외곽인 이곳에 한국인 300여명이 사흘째 구금돼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은 조지아주 엘러벨에 있는 현대차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체류 등의 혐의로 이들을 체포해 몸과 발을 쇠사슬로 묶은 뒤 200㎞ 떨어진 이곳으로 연행했다.
면회가 허용되는 첫 주말을 맞아 이날 내내 협력사 직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후 변호사와 함께 시설을 방문한 엘지엔솔 협력사 현지법인 인사는 취재진을 만나 “구금된 직원 한 명과 오늘 아침 통화했다. 밥도 주고 샤워도 할 수 있지만, 열악하다고 하더라. 수갑은 차지 않고 있다고 한다”라며 “비(B)1·비(B)2(단기 방문비자), 이스타(ESTA·전자여행허가제·비자면제프로그램의 일종)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방문 비자나 이스타로 입국해 회의, 면담 수준을 넘어 취업활동을 하면 불법이다.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에 위치한 ‘디레이 제임스 교정시설(D.Ray James Correction Facility)’. 현대차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체류 등의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이곳에 구금돼있다. 포크스턴/김원철 특파원 |
한국 정부의 영사 면담도 이날부터 시작됐다. 오후 5시30분께 면담을 마치고 나온 조기중 워싱턴총영사는 한겨레 등과 만나 “우리 국민이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배려해달라고 얘기했고 실무진에서 가능한 방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조 총영사는 담당 영사가 이날 수감자 전원을 면담하지는 못했으며 7일 오전 9시부터 면담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 총영사는 “오늘 확인된 분도 있고 안된 분도 있는데 모든 분이 지내는 데 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려고 한다”며 “우선 담당 영사가 안에 시설을 확인했고, 오늘 면담한 분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예상되는 석방 시기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수 있는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인근 서배너에 조 총영사를 반장으로 한 현장대책반을 설치했다.
한국 노동자들이 구금된 교정시설은 단속국이 민간 운영사와 계약해 이민자 구금용으로 활용해오던 곳이다. 부지 전체가 민간 회사의 관리·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은 철저히 제한됐다. 보안요원들은 한국 기자들을 주차장 부지 밖으로 밀어내는 등 거칠게 대응했다.
이들이 언제 풀려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현지에서도 전망이 엇갈렸다. 이날 포크스턴 시설에서 단속국 인사를 만나고 나왔다는 최영돈 이민 전문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단속국 관계자로부터 들은 바로는 10일까지 모든 한국 분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협상 중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박동규 이민전문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자진출국이 가장 현실적인 옵션인데, 구금을 오래 유지하면서 괴롭힐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 차원의 신속한 관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4일 이뤄진 단속이 ‘전쟁터에서 작전하듯 이뤄졌다’고 전했다. 국토안보수사국, 이민세관단속국, 연방수사국, 마약단속국, 주류·담배·총기·폭발물 단속국, 국세청, 조지아주 경찰 등 연방부터 주·지방 정부 요원 약 500명이 투입됐다고 한다. 단속국 요원들은 헬리콥터와 장갑차를 동원해 공장 입구를 봉쇄했다. 건설 현장에 있던 한 노동자는 시엔엔(CNN)에 “연방 요원들이 마치 전쟁터인 것처럼 들이닥쳤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단속에 일부 노동자들은 환풍구 등에 숨었고, 일부는 하수 웅덩이로 도망치기도 했다. 시엔엔은 이번 조처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직장에서 시행하는 이민 단속 조치 중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단속”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입구를 막고 있다. 엘러벨/김원철 특파원 |
단속 뒤 미국 당국은 현대차 배터리 공장 급습 당시 벌인 대규모 체포 영상을 공개했다. 체포된 노동자들의 몸통과 발에 쇠사슬을 채운 뒤 버스에 태우는 장면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외교부는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통화에서 “우리 국민의 체포 장면이 공개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포크스턴·엘러벨(미국 조지아주)/김원철 특파원, 서영지 천경석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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