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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원 빵 파는게 죄야?" 문 닫는 슈카빵…오픈런 '찐' 후기[먹어보고서]

이데일리 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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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원 빵 파는게 죄야?" 문 닫는 슈카빵…오픈런 '찐' 후기[먹어보고서]

서울구름많음 / 0.0 °
유튜버 슈카월드, 글로우성수 손잡고 '빵' 출시
폭우 속 긴 대기행렬…인기 제품 진열 전 '품절'
구성은 개인 베이커리급, 가격은 프랜차이즈 절반
자영업자 반발에 7일 조기 종료…'아쉽다' 반응도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무엇이든 먹어보고 보고해 드립니다. 신제품뿐 아니라 다시 뜨는 제품도 좋습니다. 단순한 리뷰는 지양합니다. 왜 인기고, 왜 출시했는지 궁금증도 풀어드립니다. 껌부터 고급 식당 스테이크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볼 겁니다. 먹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 갑니다. 제 월급을 사용하는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편집자주>

폭우 속에서도 서울 성수동 ETF 베이커리 앞에 줄을 선 방문객들.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가 만든  빵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대기행렬이 이어졌다. (사진=한전진 기자)

폭우 속에서도 서울 성수동 ETF 베이커리 앞에 줄을 선 방문객들.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가 만든 빵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대기행렬이 이어졌다. (사진=한전진 기자)


폭우가 내리던 지난 6일 아침, 서울 성수동 골목. 우산을 쓴 수십 명이 줄지어 선 곳은 오전 11시 문을 여는 팝업(임시매장) ‘ETF 베이커리’였다. 구독자 361만명을 보유한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가 지난달 30일 선보인 990원짜리 소금빵, 일명 ‘슈카빵’을 맛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다. 기자가 도착한 9시 20분쯤엔 이미 30여 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곧 직원이 구두로 순번을 불러준 뒤 “11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11시 정각 매장이 열리자 다시 사람들이 몰렸다. 현장에는 구두 순번을 받은 이들과 새로 줄을 선 방문객들이 뒤섞이며 혼선이 벌어졌다. 입장까지는 30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했고, 진열된 빵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일부 인기 제품은 손에 쥐기도 전에 사라졌다. 직원은 하루 2000여 개의 빵을 구워낸다고 설명했다. 오전·오후 각각 1000개씩, 팝업 옆 글로우성수 매장에서 당일 생산해 공급하는 구조다.

이날 5가지 제품을 골랐다. 990원 소금빵을 시작으로 부추 명란 소금빵(1890원), 마늘버터 소금빵(1890원), 쌀크림빵(2390원), 대추 무화과 깜빠뉴(2990원)까지 총 1만 150원어치였다. 스콘을 제외하고 제품은 1인당 5개까지 살 수 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우리밀 바게트와 프리미엄 소금빵은 동난 지 오래였다. 제품은 소규모 베이커리에서 볼 법한 신선한 구성이었고, 가격은 프랜차이즈보다 확연히 저렴했다. 매장 곳곳엔 ‘ETF’ 등 재치 있는 문구가 붙어 있어 팝업의 실험적 콘셉트를 드러냈다.

매장 안의 빵 진열대에는 가격표 대신 ‘ETF’ 같은 장난스러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원래 금융 용어인 ‘ETF’를 ‘빠른 거래 농장(Express Trade Farm)’이라는 식으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사진=한전진 기자)

매장 안의 빵 진열대에는 가격표 대신 ‘ETF’ 같은 장난스러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원래 금융 용어인 ‘ETF’를 ‘빠른 거래 농장(Express Trade Farm)’이라는 식으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사진=한전진 기자)


가장 먼저 맛본 건 마늘버터 소금빵이었다. 겉은 매끄럽고 속은 촉촉했으며, 마늘향과 버터의 고소함이 풍부하게 어우러졌다. 대추 무화과 깜빠뉴는 반을 가르자 대추와 무화과 등 재료들이 듬뿍 들어 있었고, 쫄깃한 식감과 밀도 높은 단맛이 인상적이었다. 쌀크림빵은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쌀 크림이 담백하게 녹아들며 한 끼로도 충분했다. 가격 대비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았다.

물론 전부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대표 메뉴인 990원 소금빵은 아쉬움이 남았다. 일반적인 소금빵에 비해 결이 적고 겉면의 바삭함도 덜했다. 층층이 겹을 쌓아올린 특유의 식감이 부족했고, 전반적으로 단순한 구움빵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빵 마니아 입장에서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오랜 대기 끝에 다시 찾고 싶을 정도의 맛은 아니었고, 팬심과 호기심으로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빵은 단순한 제품을 넘어선 의미를 가진다. ‘990원 소금빵’은 고착화된 제빵 가격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상징적인 시도였다. 슈카 측은 가격 유지의 핵심으로 ‘박리다매’를 언급했다. 팬덤 기반으로 수요를 확보하고, 빠른 회전율을 통해 판매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전략이다. 재료는 대량 매입하고, 임대료는 팝업 형태로 회피해 단가를 낮췄다. 고물가 시대 영리한 사업 전략이었다.


도마 위에 담긴 ETF 베이커리 빵 5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쌀크림빵, 대추 무화과 깜빠뉴, 마늘버터 소금빵, 소금빵, 부추 명란 소금빵. (사진=한전진 기자)

도마 위에 담긴 ETF 베이커리 빵 5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쌀크림빵, 대추 무화과 깜빠뉴, 마늘버터 소금빵, 소금빵, 부추 명란 소금빵. (사진=한전진 기자)


물론 이 시도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제빵 자영업자들은 “이 가격은 불가능하다”며 반발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폭리 프레임으로 몰리는 게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슈카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자영업자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결국 ETF 베이커리는 오는 일까지만 영업한 뒤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젝트를 마케팅으로 볼지, 유통 혁신의 실험으로 볼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저가 빵을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지탄까지 감수해야 하는 분위기는 과도하다. 슈카빵은 단순한 가격 파괴 이벤트가 아닌, 빵값 구조에 대한 질문이자, 소비자·업계 모두에게 던진 제안이었다. 제빵업계가 신뢰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기자가 구매한 ETF 베이커리 빵 5종의 단면. 모든 제품을 합쳐도 총 1만 150원에 불과했다. (사진=한전진 기자)

기자가 구매한 ETF 베이커리 빵 5종의 단면. 모든 제품을 합쳐도 총 1만 150원에 불과했다. (사진=한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