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트럼프 행정명령에 활짝 웃는 비트코인
지난해 초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은 디지털자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도권 금융의 거대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비트코인 가격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어디까지나 ‘선택적 투자’에 머물렀다. 호재가 생기면 자금이 들어오고, 시세가 흔들리면 빠져나가는 시장이었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문턱을 넘었다는 상징성은 컸지만, 자금 유입 구조적 안정성은 여전히 취약했다.
반면 지금 미국에서 논의되는 ‘401(k) 퇴직연금’ 시장 개방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401(k)는 미국 내 확정기여형 직장 퇴직연금 제도를 말한다. 미국 내국세법 401조 k항에 규정돼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행정명령이 현실화되면, 미국 근로자 급여 일부와 기업의 매칭 지원 자금이 은퇴연금 계좌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처가 추가되는 차원을 넘어, 매월 꾸준하게 대규모 자금의 안정적 유입을 의미한다. 금융사적 대전환을 불러올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 ‘401(k) 투자자 대체 자산 투자 기회 확대’에 서명하며 비트코인 시장이 다시 들썩인다. 미국 기업 퇴직연금 계정인 401(k) 계좌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체 자산 투자를 허용하도록 지침을 정비하라는 내용이다. (UPI=연합뉴스) |
“비트코인도 퇴직연금 상품에 포함 가능”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연금 시장 열려
2025년 8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401(k) 투자자 대체 자산 투자 기회 확대’에 서명했다. 이는 401(k) 계좌에 비트코인과 여타 코인을 비롯한 대체 자산 투자를 허용하도록 관련 부처에 180일 이내 지침 정비를 명령한 내용이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퇴직소득 보장법(ERISA)상 401(k) 상품에 디지털자산을 포함하는 것이 책임 범위에 있는지를 재검토하고, 소송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지대 마련에 착수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유자격 투자자 기준 등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퇴직연금은 엄청난 시장이다. 미국의 개인 주식 계좌 수는 1억개 남짓인데, 그중 54.3%가 은퇴연금 계좌다. 절세, 기업 지원 등 장점이 많아 개인 투자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
자산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2025년 1분기 기준, 미국 은퇴연금 자산 총규모는 약 43.4조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기업 퇴직연금 계정(401K)과 개인 퇴직연금 계정(IRA) 규모는 약 26.8조달러에 달한다. 이 자금은 주로 펀드에 투자돼 있는데, 이 중 비트코인 현물 ETF로의 전환 비중을 1%만 잡아도 총 2680억달러의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될 수 있다.
그동안 개인은 IRA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할 수 있었지만, 기업이 제공하는 퇴직연금 제도인 401(k)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기업이 기본 설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금융당국 가이드라인 없이는 상품 편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제도적 문이 열리고 있다. 기업 퇴직연금 계좌에 비트코인 ETF가 포함되면 매월 일정한 금액이 지속적으로 유입된다.
어마어마한 미국 퇴직연금 시장
세제 혜택 탁월…직장인 필수 투자
미국 은퇴연금 계좌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401(k)와 개인이 직접 개설하는 IRA다. 두 계좌는 일반 투자 계좌와는 차별화되는 여러 세금 혜택을 제공받는다.
먼저, 세금 납부 연기(Tax-Deferred)다. 지금 당장 세금을 내지 않고 투자금을 불릴 수 있으며, 은퇴 후 자금을 인출할 때 세금을 납부하면 된다. 젊은 시절 높은 소득세를 내는 시기에 세금 공제를 받고,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들어 낮은 세율이 적용될 때 세금을 내는 절세 구조다.
둘째, 세금 면제(Tax-Free)다. IRA 중 ‘Roth IRA’는 납입 시에는 세금 공제를 받지 못하지만, 대신 계좌 내에서 불어난 투자 수익에 대해 인출 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이는 특히 장기간 고수익을 기대하는 주식 투자에 매우 매력적인 포인트다. 오랜 기간 복리 효과로 불어난 수익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다. 이러한 세제 혜택은 미국인에게 은퇴연금 계좌를 주식 투자의 최적 수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셋째는 고용주의 매칭 지원(Employer Matching)이다. 많은 미국 기업은 직원 401(k) 납입금에 대해 일정 비율로 회사가 추가 지원금(Matching)을 넣어준다. 예를 들어, 직원이 월급의 5%를 401(k)에 납입하면, 회사도 같은 금액이나 절반 정도 금액을 추가로 넣어주는 방식이다. 사실상 ‘공짜 돈’을 받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직장인은 이 혜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401(k)에 적극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를 퇴직하더라도 401(k)를 개인연금 계좌인 IRA로 승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동화된 장기 투자(Forced, Automated Long-Term Investing)다. 401(k) 계좌는 급여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를 습관화할 수 있다. 은퇴 전까지 인출 제한이 있어, 단기 충동 매매 대신 장기적 투자 성격을 띠게 된다. 이는 미국 증시 꾸준한 상승과 맞물려 장기간 복리 효과가 크게 작동한다. 피델리티에 따르면, 2024년 2월 기준으로 약 68만8000명에 달하는 은퇴연금 백만장자가 존재한다. 2020년 약 30만7000명에서 4년도 채 안 돼 124% 증가했다.
ETF는 기관 투자, 401(k)는 개인 투자 붐
기존 코인 관심 없던 직장인도 코인 시장 편입 기대감
이번 401(k) 행정명령은 비트코인 현물 ETF보다 더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401(k)는 미국 근로자 노후를 책임지는 핵심적인 은퇴 자산이다. 2025년 기준, 401(k) 총자산 규모는 9조달러에 달한다. 반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순유입된 자금은 지난 8월 26일 기준 540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만약 401(k) 자산 중 단 1%라도 비트코인에 배분된다면, 이는 그간 ETF 순유입액을 훌쩍 뛰어넘는 900억달러 신규 자금이 들어오게 된다.
투자 주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이미 증권 시장에 접근성이 있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401(k)는 일반 직장인부터 은퇴를 앞둔 노년층까지 훨씬 더 넓은 범위 대중을 아우른다. 직장인이 회사를 통해 운용되는 401(k)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포함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수많은 ‘새로운’ 투자자를 암호화폐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돈’의 유입뿐만 아니라, 코인 시장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 자체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기관 투자자 시대’를 열었다면 401(k) 투자는 ‘개인 투자자 시대’를 열 것이다. 이는 비트코인을 투기 자산을 넘어, 미국인 노후를 책임지는 주요 자산으로 편입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행정명령 발효 후 6개월, 401(k)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순간, 비트코인 가격과 위상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재평가될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5호 (2025.09.03~09.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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