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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밀리면 끝장"... 사생결단 나선 국힘의 '특검 잔혹사'[노변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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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밀리면 끝장"... 사생결단 나선 국힘의 '특검 잔혹사'[노변정담]

속보
민간상업발사체 '한빛-나노' 실패한듯…폭파 장면 포착
보수 진영 쑥대밭 만들었던 국정농단 특검
휘청이던 보수에 추가타 날린 '이명박 구속'
이번엔 '위헌 정당' 압박… 결사항전 태세로

편집자주

주말 아침, 다정하고 친근하게 한국 정치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갈등과 분노가 아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야당말살 정치탄압 특검수사 규탄대회'를 열고 사생결단식 특검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야당말살 정치탄압 특검수사 규탄대회'를 열고 사생결단식 특검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국 시민 여러분, 우리에게는 목숨이 남아 있습니다. 이재명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목숨 걸고 진격합시다."

지난 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을 가득 메운 1만 명(국민의힘 추산)은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재명 정권 타도를 외쳤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부터 당협위원장, 당원들까지 '국힘'을 지키려 전국에서 올라온 이들이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 중심에 선 장동혁 대표는 우비도 마다한 채 "목숨을 걸겠다"며 특검과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지난 2일 내란 특검이 국민의힘 추경호 조지연 의원과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 등에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연이틀 '복도 연좌 농성'에 이어 '본청 앞 규탄대회'까지 열며 필사적으로 저항에 나선 겁니다. 그야말로 결사항전입니다.

이러한 강경 대응 기조의 배경에는 오랜 '특검 트라우마'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 인사들은 과거 특검 수사로 진영이 쑥대밭이 됐던 악몽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이번엔 166석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위헌정당해산심판 카드까지 꺼내들고 있으니 위기감은 최고조로 치닫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특검 강경 대응은 국민의힘에 양날의 칼과도 같습니다.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릴 수 있지만, 강경 일변도로 나섰다가는 12·3 불법계엄 단죄와 반성을 바라는 민심과는 멀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민의힘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는 '특검 잔혹사'의 기억을 살펴보겠습니다.

'검사 윤석열'이 불러온 칼바람


1999년 첫 도입 이후 현재까지 제정된 특검법은 총 17개입니다. 이 중 7개가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을 겨냥합니다. 민주당 계열 진보정당 대상 특검법도 7개로 수는 같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1998~2003년·2003~2008년)에 집중돼 있어 현시점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보수를 궤멸 위기까지 몰고간 건 단연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입니다. 2016년 11월 시작된 특검 수사는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유착해 삼성 등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을 다뤘습니다. 이 수사는 2017년 3월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 그리고 2021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역 20년·벌금 180억 원 확정 판결로 이어졌습니다.

윤석열(오른쪽) 전 대통령이 재임 시기였던 2023년 12월 29일 서울 용산 한남동 관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나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오른쪽) 전 대통령이 재임 시기였던 2023년 12월 29일 서울 용산 한남동 관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나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 사건이 보수 진영에 끼친 파장은 막대합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찬반을 둘러싼 친박·비박 의원들 간 갈등이 폭발했고, 초유의 보수 정당 분당 사태(자유한국당·바른정당)가 벌어졌습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헌재 결정을 부정하고 '태극기 부대'를 상징하는 아스팔트 보수에 영합하는 인사들도 속출했습니다.


당시 보수 진영 지지율은 10%대.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이 '1987년 체제' 이후 최고 득표율인 51.6%를 기록했던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이었습니다. 당시 특검팀 수사팀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인지된 사건'까지 수사한 특검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 범위도 보수 진영을 당혹케 했습니다. 당시 특검법은 수사 대상 15호로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적시했습니다. 국정농단 특검은 이를 근거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에 착수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구속시켰습니다. 일반 수사였다면 별건 수사 논란이 벌어질 수 있었겠지만 특검은 그렇지 않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됐습니다.

2017년 4월 구속 기소된 박 전 대통령 재판이 한창이던 2018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또 다시 구속된 사건은 휘청이던 보수 진영에 추가타를 날렸습니다. 특검이 아닌 서울중앙지검이 다스 비자금 조성 및 뇌물수수 혐의 수사·재판을 이끌었지만, 보수 정당에 수사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건 매한가지였습니다. 대법원은 2020년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합니다. 보수 진영의 두 거목이었던 전직 대통령이 모두 중형을 확정받은 보수 진영의 비극입니다.


구속 상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9년 3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속 상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9년 3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2025년. 보수 진영은 다시 특검 국면 속에서 혹독한 시간을 버티고 있습니다. 3개 특검이 동시에 돌아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파견 검사 수는 총 120명. 국정농단 특검 당시 20명 검사의 자그마치 여섯 배 규모입니다. 게다가 민주당은 수사 기간과 범위, 인력을 확대하는 '더 센 특검안'을 강행 추진 중입니다.

3대 특검 역시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수사 대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검 칼날이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넘어 국민의힘 심장부까지 치고 들어올 것이라는 분노와 우려가 들끓는 배경입니다. 3대 특검의 강제수사 대상에 오른 국민의힘 의원은 벌써 7명. 내란 특검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12·3 불법계엄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는지 여부까지 따질 기셉니다. 민주당이 한 번 재미 봤던 특검으로 국민의힘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게 보수 진영의 관측입니다.

장동혁호 미래는



장동혁(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3일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 회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3일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 회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 대표의 사생결단식 극단적 투쟁 전략은 이런 폐허 위에서 싹텄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이전투구를 통해 윤 정부 몰락에 망연자실한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얻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윤 정부 자멸을 막지 못했던 보수 정당의 각종 병폐는 내버려둔 채 극단적·소모적 갈등만 격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장 대표가 윤 전 대통령 접견 방침을 유지하는 등 '탄핵의 바다'를 끝내 건너지 않으면서 야당 탄압만 외치는 게 얼마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수입니다. 다행히 장동혁 지도부에서는 정책 정당을 표방하며 국정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어젠다 발굴을 고민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장 대표가 특검 대응과 민심 회복이라는 난제를 풀고 국민의힘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목숨을 걸겠다는 그의 결의가 어디로 향할지 주목됩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