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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렌터카로 11박' 일주..트빌리시부터 바투미까지. 1화 [이환주의 내돈내산]

파이낸셜뉴스 이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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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렌터카로 11박' 일주..트빌리시부터 바투미까지. 1화 [이환주의 내돈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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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유럽스퀘어는 이름 그대로 유럽의 한 복판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이환주 기자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유럽스퀘어는 이름 그대로 유럽의 한 복판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이환주 기자


해발 고도 2000m에 있어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우시굴리'는 1년 내내 만년 설을 볼 수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해발 고도 2000m에 있어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우시굴리'는 1년 내내 만년 설을 볼 수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수도 트빌리시의 메테히 교회.

수도 트빌리시의 메테히 교회.


조지아의 전통 시장.

조지아의 전통 시장.


[파이낸셜뉴스] 우연히 가수 박진영이 과거 힐링캠프라는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공은 모두 운이었다"고 말하는 쇼츠를 봤다. 박진영은 자신의 성공 이유에 대해 어느 순간 "나에게 지독한 운이 따랐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고백한 뒤, 그 후 운이 따랐던 일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현재 부모님의 자식(박진영)으로 태어난 일 △어렸을 때 엄마가 억지로 피아노를 치게 한 것 △7살 때 미국에서 2년 반을 억지로 살면서 마이클 잭슨을 만난 일 △영어를 배우게 된 것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 시대에 태어난 것 △(작곡가) 김형석을 만난 것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등 모두가 운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진영은 "(나열한 10개 이상의 우연 중) 단 한 개만 없었어도 지금의 자신(이 결과)은 없었다"며 "그런데 제가 '어딜 감히 뭘 잘했다고 떠들었지'라고 반성한 뒤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치기 어린 20대 무렵까지 필자는 성공하고 똑똑한 사람들의 겸손은 '위선의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한 분야의 정상을 찍거나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영리한 그들에게 '교만'대신 '겸손'은 그들의 성공과 지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 정도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들의 겸손은, 날숨과 '들숨'처럼 혹은 음식과 '똥'처럼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깨달았다. 성공한(똑똑한)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방정식을 깨치거나, 미적분을 이해하게 된 수학도는 자신의 꽤 많이 안다고 자만할지 모르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와 끈 이론을 새롭게 접한 수학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지평이 넓어질 수록 자신의 모르는 미지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는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거인의 어깨가 높아질 수록 자신이 몰랐던 눈에 보이지 않던 세계가 더 넓어짐을 깨닫게 되는 '결과'에 대한 사실 진술일 뿐이다.

유튜브 캡처. 힐링캠프, 한발자욱 채널

유튜브 캡처. 힐링캠프, 한발자욱 채널


8월 중순부터 약 2주동안 서아시아의 '조지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 조지아란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뭐가 유명한지 등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조지아 커피' 브랜드의 고향인 미국 조지아 주와 코카서스(서아시역) 지역의 국가 조지아(그루지아)가 다르다는 것도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여러가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조지아로 장작 11박 12일의 렌터카 여행을 다녀왔다. 트빌리시, 카즈베기, 유타, 구다우리, 므츠헤타, 쿠타이시, 우슈굴리, 메스티아, 바투미, 고리 등 조지아 전국을 누볐다.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다양한 우연과 운에 따라 양상이 변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한 비행기의 연착, 쏟아지는 폭우 등 우연적인 요소에 따라, 우연히 마주치는 고양이와 여행객과의 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전혀 다른 곳, 어쩌면 한 번도 발길이 닫지 않았을 곳의 낯선 사람들을 보다 보면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지도 깨닫게 된다.

조지아, 와인의 발상지

흔히 와인의 발상지를 '프랑스'로 오인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조지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와인의 발상지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약 8000년 전, 조지아 남동부의 가다칠리아 고라 유적지에서 와인 양조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 증거 중 하나다.


조지아는 고대부터 독특한 와인 제조법인 '크베브리' 방식을 사용해 와인을 만들었다. 크베브리는 점토로 만든 큰 항아리로, 땅속에 묻어 포도 껍질과 씨앗까지 함께 발효시키는 전통 방식이다. 이 방식은 2013년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일부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 등에서는 여행객들에게 홈메이드 와인을 내놓기도 하는데 전통방식 와인은 '소똥냄새' 비슷한 특유의 향이 났다.

조지아 와인은 카헤티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는데 이 지역은 조지아 와인의 약 70% 이상을 생산하는 최대 와인 산지다. 조지아는 와인을 생산하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활용해 증류주를 만드는데 '차차'라는 이름의 전통주다. 적게는 30~40도, 높게는 50도가 넘는 강한 위스키 맛이 난다.

현지 마트에서는 1만원~2만원이면 수십, 수백 종의 와인을 살 수 있고 빈티지가 높은 와인도 한국에 수입되는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과 비교하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라는 내용의 벽화. 사진=이환주 기자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라는 내용의 벽화. 사진=이환주 기자


조지아 투어 중 들렸던 소규모 와이너리의 포도밭.

조지아 투어 중 들렸던 소규모 와이너리의 포도밭.


와이너리에서 테이스팅을 진행한 와인과 차차, 브랜디 등.

와이너리에서 테이스팅을 진행한 와인과 차차, 브랜디 등.


조지아 현지 마트에서 판매되는 1만~3만원대 저렴한 와인들.

조지아 현지 마트에서 판매되는 1만~3만원대 저렴한 와인들.


소득은 낮지만 저렴한 물가, 다양한 기후

2024년 기준 조지아의 1인당 GDP는 약 6840달러로 한국의 4분의 1수준이다. 하지만 현지 물가가 저렴해 구매력 평가 기준(PPP) 기준 1인당 GDP는 약 2만5000달러로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조지아 사람들의 주식인 '푸리'라는 빵이 있는데 화덕에 구워내는 바게트 빵 크기의 빵으로 한국 돈으로 500원~700원 수준이다.

조지아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약 70% 수준이다. 인구는 한국의 10%도 되지 않는 2024년 기준 370만명에 불과하다. 공용어는 '조지아어'를 사용하는데 독자적인 문자체계로 전국민이 사용한다. 조지아어는 고대 조지아어(5세기부터 11세기까지)에서 중세 조지아어를 거쳐 현대 조지아어로 발전했다. 문법 구조, 어휘, 발음에 변화가 있긴 하지만 현대 조지아어 사용자는 대부분 고전 문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조선왕조 실록, 삼국유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는 '조지아 연대기'라는 거대 건축물도 만나 볼 수 있다.

조지아는 평야, 산악, 해안 등 복잡한 지형으로 인해 다양한 기후 지역을 형성한다. 한국처럼 4계절이 뚜렷하며 수천 미터 이상 고지대는 서늘하고, 8월 일부 지역은 한국의 여름처럼 덥다. 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어 '아시아의 스위스'라고도 불린다.


과거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많은 러시아 인들이 조지아로 이민을 오는 바람에 최근 들어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조지아 주민은 "러시아인들이 임대료 등을 끌어 올려 최근 물가가 크게 올랐다"며 현지에서 '반러' 감정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지아 곳곳의 벽화에서 'F'로 시작하는 러시아 욕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분위기다. 현지에서 만난 독일 관광객 조차 "조지아를 유럽연합의 일부"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조지아는 서아시권에 속하는 아시아 국가로 한때 EU가입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EU 가입이 중단된 상황이다.

20%의 조지아 영토가 러시아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표지판. 사진=이환주 기자

20%의 조지아 영토가 러시아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표지판. 사진=이환주 기자


조지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러 감정 낙서들.

조지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러 감정 낙서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대표 관광 명소인 시계탑.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대표 관광 명소인 시계탑.


조지아 트빌리시의 대표 관광명소 '조지아 연대기' 건축물.

조지아 트빌리시의 대표 관광명소 '조지아 연대기' 건축물.


한국에 우호적인 조지아, 1년간 무비자 체류 가능

우리나라 국민은 조지아에 1년 동안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어 한 달 살기는 물론 장치 체류지로도 각광 받고 있다.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 후, 그동안 러시아어식 표기였던 '그루지야' 대신 영어식 발음인 '조지아' 공식 국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정부는 2010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조지아의 요청에 따라 '조지아'라고 공식 표기하기 시작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2015년 이후 한국사람은 장기간 무비자 입국이 허용됐다.

조지아 국민의 약 83%가 그루지야 정교회(동방정교회)를 믿는다. 어느 도시를 가든 한국으로 치면 국보나 보물급 수준의 성당이 널려 있다. 유명한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에 지정돼 있고, 작은 성당도 규모나 벽화 등에 압도될 정도다.

조지아 여행 중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러시아' 출생으로 알았던 스탈린이 사실은 러시아령 조지아 고리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또 조지아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운전할 때 창문을 열고 손을 차 밖으로 빼고 운전한다. 그리고 조지아는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박람회처럼 세상 그 어느나라보다 다양한 제조사의 자동차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은 교통안전 규제가 허술한 탓인지 일부 차는 운전석(운전대)이 왼쪽에, 또 일부는 오른쪽에 있는 경우도 많았다. 사고로 인해 범퍼가 날아간 채로 운전을 하는 조지아 차량도 수없이 많았고, 고속도로나 국토를 따라 대형 화물 트럭이 수km 이상 주차돼 있는 풍경도 퍽 인상적이었다.

조지아 여행의 매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시아지만 마치 저렴한 유럽에 와서 원없이 와인과 대자연을 즐기고, 다정한 고양이와 잠시 쉴 수 있는 아직 한국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조지아 서쪽 해안가 도시 바투미의 대표 관광명소이 알리와 니노 동상. 사진=이환주 기자

조지아 서쪽 해안가 도시 바투미의 대표 관광명소이 알리와 니노 동상. 사진=이환주 기자


조지아 곳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고양이.

조지아 곳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고양이.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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