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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고 섭섭해하지 않는다… 한국인과 다른 일본인의 소통 방식[내책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유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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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고 섭섭해하지 않는다… 한국인과 다른 일본인의 소통 방식[내책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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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가 전하는 지극히 사적인 일본
지극히 사적인 일본 / 나리카와 아야 / 틈새책방



대학교 2학년 때 한국에 오게 됐다. 그때가 2002년이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해였고,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갔다. 그때의 열기는 잊을 수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중학교 여학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사건이 일어났다. 분노한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 시위를 벌였다. 연말 대선에 서는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일본에서 20년간 살아오면서 그렇게 역동적인 분위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한국에 반해 버렸다.

그렇게 한국을 경험하고 일본에 돌아간 뒤 아사히신문에 입사해서 기자가 됐다. 9년간 기자로 활동하다 2017년에 다시 한국에 왔다. 남편에게는 "1년만"이라고 하고 왔는데 어느새 8년이 지나 버렸다. 거의 매달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살고 있다. 일본에서 살면 일본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일본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기도 하고, 살면서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발견할 때도 많다.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거나 취재를 하면서 일본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도 많다. 이번에 출간한 '지극히 사적인 일본'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인 셈이다.

한국에 많이 적응했지만 지금도 익숙지 않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 친구들이 자꾸 나에게 서운해하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일이 없으면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다. 일본에서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자꾸 "서운하다"는 말을 듣는다.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외국인이 안쓰러워서 나오는 마음 씀씀이일 수는 있지 만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려다가 깨달았는데, 일본어에는 한국어의 '서운하다'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비슷한 말은 있지만 딱 맞는 말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일본인은 서운하다는 감정을 별로 느끼지 않아서인 것 같다. 서운한 감정은 상대방에게 뭔가를 기대했지만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일본 친구들은 내가 연락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게 아닐까. 내가 수술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일본 친구들의 반응은 "지금은 괜찮아?"였다. 내가 수술받은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섭섭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또 한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일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답답한 면도 있다. 명확하게 의견을 밝히지 않고 돌려서 말하는 사람이 많아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재차 확인하게 된다. 그럴 때는 내가 성질 급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다.

나는 평균적인 일본인도 아니고, 일본인을 대표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극히 사적인 관점이지만, 그래도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니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해가 더 많은 면도 있다. 그 작은 오해가 양국 사이에 큰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인에 대해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진다면 좋겠다.

나리카와 아야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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