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7대 예술감독
3년 임기 마치고 오는 5일 고별무대
“3년간 환상적, 인간적, 음악적 모험”
3년 임기 마치고 오는 5일 고별무대
“3년간 환상적, 인간적, 음악적 모험”
2022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7대 예술감독으로 부임, 3년 임기를 마치는 다비트 라일란트 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미 모두 뛰어난 음악가이지만, 제가 원한 것은 단원들이 자기 연주를 들으며 ‘와, 내가 이렇게 잘할 수 있었나, 내가 이렇게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었나’ 하고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었어요.”
국립심포니교향악단의 수장 다비트 라일란트(46) 예술감독이 오는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공연을 끝으로 3년의 여정을 끝낸다. 협연자는 바이올린 거장 빅토리아 물로바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국립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영입됐던 라일란트 감독은 악단 내부의 혁신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악단 관계자들은 그가 취임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던 무렵부터 “단원들이 감독님의 음악성을 무척이나 신뢰하고 따른다”며 “리허설 때마다 달라진 음악을 들으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라일란트 감독에게도 지난 3년은 ‘환상적이고, 인간적이며, 음악적인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한국을 알게 되고, 한국인의 삶과 일과 음악과의 역동적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내 삶에 중요한 과정이었다”며 “많이 배우고, 살아내고, 사랑했다”고 돌아봤다.
덕분에 국립심포니교향악단은 라일란트 감독과의 함께하며 변화와 도약의 시기를 겪었다. ‘국립’이란 타이틀을 안으며 악단은 새로운 미래와 비전을 제시하고, 명칭에 걸맞은 악단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 역시도 “사람들에게 신뢰받아야 한다, 혹은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며 그 문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나게 있었다”고 말한다.
2022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7대 예술감독으로 부임, 3년 임기를 마치는 다비트 라일란트 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임기 동안 라일란트 감독은 다양한 음악 세계로 한국 관객을 이끌었다. 소위 3B(베토벤, 브람스, 바흐)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음악 팔레트를 선물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슈만 교향곡 사이클을 통해 고전과 낭만의 뿌리를 탐구했고,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등 프랑스 레퍼토리, 윤이상 음반 녹음과 한국의 신진 작곡가 발굴 등 국립 단체다운 음악 세계의 기반을 다지고 지평을 열었다. 그의 임기 동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작곡가 워크숍을 통해 신진 작곡가의 창작곡이 20개나 나왔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미션은 여러 가지 다른 음악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것”이라며 “프랑스 음악은 브람스 음악과는 다른, 투명하고 가볍고 음악의 새로운 빛을 비추는 특성이 있는데, 국립심포니와 프랑스 곡을 연주하며 서로에게 풍부한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라일란트 감독은 불어 문화권인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 메츠 국립오케스트라(2018~)와 스위스 로잔 신포니에타(2018~)의 음악감독이자, 독일에 거주하며 독일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수석지휘자,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슈만 게스트’로 활동하는 음악인이다. 프랑스와 독일을 아우르는 그의 정체성은 한국 대표 악단의 정체성과 두루 융합하며 이같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지난 3년간 해마다 7주씩 한국에 머물며 국립심포니 단원들과 깊은 유대를 쌓았다. 그는 단원들을 향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라일란트 감독은 “한국의 단원들은 책임감이 있어 늘 제시간에 모여 집중력을 200% 발휘한다”며 “모두가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전체를 위해 쓸 것인지 고민한다”고 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유럽 연주자들이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것과는 눈에 띄게 다른 점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과 음악의 진실을 찾기 위해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했다.
2022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7대 예술감독으로 부임, 3년 임기를 마치는 다비트 라일란트 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지난 3년간 한국 관객은 라일란트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라일란트 감독은 “한국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다 준다”며 “음악이 시작되면 관객들의 신뢰와 즐거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연에서의 가장 좋은 반응은 ‘시끄러운 침묵’”이라며 “한 악장이 끝난 뒤 박수도 무엇도 필요 없는 침묵만이 다가올 때 관객의 가장 강렬한 반응을 경험했다”고도 말했다. 공연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누는 감상평과 지지 등 적극적 소통방식 역시 그를 감동케 했다.
그가 마지막 무대로 선택한 곡은 ‘전람회의 그림’이다. 그는 “러시아의 피아노곡이었고, 라벨이 협주곡으로 만든 이 곡은 두 얼굴을 가진 작품”이라며 “이는 나의 이중적 정체성과도 연결돼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파괴됐지만, ‘키이우의 대문‘이라는 악장에선 오늘날의 복잡한 정치적 맥락도 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감독으로는 이별이지만, 그는 “이 무대가 마지막 콘서트는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는 “나와 단원들이 해온 공동 작업이라는 커다란 서클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시간”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여기가 끝이 아니고, 음악이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단원들에게 어떤 지휘자이기보다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우린 모두 음악가이고 모두 평등해요. 각자 다른 영역에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전체를 이뤄낸 협력자일 따름이에요. 제 스승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우리는 모두 미래의 귀신’이라고 했어요.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영혼으로 돌아가니 하루하루 더 겸허하게 살아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