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원통한 30년, 세뇌당해 인생 낭비”…신천지 ‘청춘반환소송’ 보니

한겨레
원문보기

“원통한 30년, 세뇌당해 인생 낭비”…신천지 ‘청춘반환소송’ 보니

속보
KTX 운행 중에 화재...승객 전원 하차·대피
신천지 교주 이만희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 <한겨레> 자료사진

신천지 교주 이만희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30년 세월이 원통해요. 지금도 젊은 사람들이 세뇌당해 인생을 낭비당하고 있어요.”



김태순(71)씨는 경기도 가평 신천지 앞에서 매주 한번씩 1인시위를 벌인다. 지인 소개로 1989년 신천지에 입교한 김씨는 2020년에 탈퇴했다. 김씨는 3일 한겨레에 “사역이라는 명분으로 지인 전도, 밥 짓기, 전단지 붙이기, 기획 부동산 업무까지 했는데 한푼도 못 받았다. 헌금과 전도로 빚만 수천만원 남았고 가정도 풍비박산 났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신천지의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에 세뇌당해 벌어진 일이라며, 교단을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종교적 가스라이팅’ 개념은 서울서부지법 난동 수사 과정에서도 거론됐다. 경찰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사건의 배후라는 의심을 품고 ‘종교적 가스라이팅’을 거쳐 교인들이 난동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이런 사건에서는 가스라이팅이 장기간 심리적으로 이뤄지는 터라 범행이나 피해가 ‘본인의 의지 탓’인지 ‘세뇌에 따른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천지를 대상으로 신도들이 제기하는 손해배상 청구(청춘반환소송)가 진행되고 있지만 법정에서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종교적 가스라이팅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던 지난달 5일, 전광훈 목사가 교회 신도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종우 기자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던 지난달 5일, 전광훈 목사가 교회 신도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종우 기자


김씨에 앞서 2018년 신천지를 탈퇴한 3명은 신천지와 관련자들을 상대로 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 법원은 이 가운데 “신도로 포섭된 이후 친절과 호의가 순식간에 사라져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등의 불안 심리 등을 이용했다”며 1명의 피해를 인정(배상금 500만원)했다. 종교적 가스라이팅 영향을 일부나마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종교적 가스라이팅에 대해 “종교를 선택하기 전·후 태도나 생활 변화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이 사건에서는 “(이런 행위들이) 강압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만한 여지가 없다”고 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홍종갑 변호사는 “자발적 동의라고 보기 어렵다며 처벌하는 게 가스라이팅 범죄인데, 종교 영역에서 그 판단이 유독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천지 쪽은 “신앙생활과 봉사, 헌금 등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며 “교회는 고용 관계를 맺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대가’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헌금과 봉사 역시 강제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종교적 가스라이팅이 법원에서 인정받기는 유독 어렵다고 전한다. 교회 내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평화나무 기독교회복센터 센터장 김디모데 목사는 “종교에 빠져 본인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피해를 겪은 사건에서는 피해자 스스로 세뇌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거나, 이후 피해를 깨달았더라도 과거 발언 녹취 등에서 자발적 행위라는 진술이 나와 인정이 특히 어렵다”고 했다. 염건령 한국범죄학연구소장도 “종교 내 착취는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로 인해 사법부도 적극적 판단을 꺼린다”고 전했다.



다만 정부가 가스라이팅에 따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건 전향적인 변화다. 법무부는 지난 2월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 조항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조항은 목회자와 신도 등 가스라이팅이 일어나기 쉬운 관계에서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내린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김디모데 목사는 “민법 개정안과 전 목사 수사 과정에서 종교적 가스라이팅이 언급된 것은 그 심각성을 수사기관과 법원도 인지한 것”이라며 “개념을 확장하고 정교화해 종교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