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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과 뱅크런 [전성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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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과 뱅크런 [전성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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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스테이블코인. 언스플래시

주요 스테이블코인. 언스플래시


전성인 |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관련 업계가 열심히 밀고 있고, 정부도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국회에는 이미 몇가지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이하에서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하여 독자들이 자칫 오해할 만한 사항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정책 대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점은 모든 스테이블 코인이 다 스테이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스테이블’이라는 말은 코인 가치가 안정적이라는 뜻이고, 이는 구체적으로 ‘특정 표시 통화와의 교환 가치가 특정 수준(대개 1:1)에 고정(페그)되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교환 가치를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방식은 담보 자산으로 지급 능력을 과시하거나, 수요와 공급에 근거한 알고리즘을 통해 교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중 알고리즘 방식은 테라와 루나 사태에서 보듯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 현실적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이 많은 사람들이 ‘담보 자산으로 지급 능력을 보증하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담보 자산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미국 국채처럼 부도 가능성이 없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이다. 그래서 테더와 같은 담보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많은 양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전혀 아니다.



미국 국채는 부도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안전’ 자산이라고 통상 인식되지만, 가격변동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위험’ 자산이다. 시장의 이자율이 변하면 국채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출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채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비트코인과 다를 바가 없다. 가격 변동 위험이 내포된 자산을 많이 보유한다고 그것을 담보로 발행된 코인의 교환 가치가 고정될 수는 없다.



은행 예금은 어떤가? 국채 보유보다 교환 가치 고정에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다. 은행도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스테이블 코인이 최근에 화려하게(?)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에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은행의 뱅크런과 파산은 스마트뱅킹 속도 탓에 전례 없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클릭 몇번에 가치가 증발하는 예금을 가졌다고 해서 교환 가치 고정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가 진정으로 스테이블해질 수 있는가? 지하 금고에 발행액과 정확히 매칭되는 해당 통화 실물을 보관하거나, 아니면 해당 통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에 예금을 보유하는 것이다. 해당 통화로 전액 지급준비금을 보유하지 않는 한, 코인 발행업자가 혼자 힘으로 교환 가치를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여기서 두번째 질문이 생긴다. 그럼 왜 코인 발행업자들은 해당 통화를 전액 보유하는 대신 일부를 국채나 다른 금융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인가? 돈 때문이다. 국채나 금융자산은 수익을 내는데 이는 고스란히 코인 발행자가 가져간다. 즉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는 무이자로 차입해서 포트폴리오 투자를 한 뒤, 그 수익을 모두 자신이 갖는 것이다. 그러니 전액 지급준비를 회피하려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여기서 세번째 논점이 나온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는 무조건 해당 표시 통화 실물 또는 중앙은행 예금으로 전액 지급준비하고, 발행 자금을 이용해서 수익을 얻는 일체의 투자행위를 금지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실제로 데이비드 리카도처럼 명석한 경제학자도 금본위제하에서 모든 지폐는 금으로 전액 지급준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은 돈벌이에 눈이 먼 은행가들의 욕구를 간과했다. 그리고 현실에서 보기 좋게 실패했다.



가장 좋은 예가 영국이 1844년에 입법한 은행법이다. 이 법은 리카도를 계승한 통화학파의 입장을 지지하여 잉글랜드 은행의 신규 발권액은 전액 금이나 국채로 지급준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은 그 후 약 십년 주기의 은행 공황을 방지하지 못했고, 정부는 위기 때마다 은행법을 정지시키고 잉글랜드 은행의 추가 발권을 허용했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적 교훈의 결론은 무엇일까? 코인 발행자에게 어느 정도의 부분 지급준비를 허용하되, 뱅크런을 막기 위해 예금보험과 중앙은행 지원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코인 업자를 ‘은행’으로 만들고, 건전성 규제, 금산분리 규제, 금융소비자 보호 규제, 통화정책상 감독 등을 부과한다는 뜻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기술은 진화해도 경제적 본질은 불변인 경우가 많다. 정부와 국회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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