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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폭탄에 ‘RIC 연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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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폭탄에 ‘RIC 연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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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미국의 대러 제재 일환으로 50% 관세 부과받자 태도 변화
모디, SCO 참석차 7년 만의 ‘방중’…동시에 푸틴과 50분 대화도
국경 분쟁 등 이해관계 상충되지만 미 견제 위한 3국 협력 강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을 굳건히 붙잡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이들이 향한 곳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 있었다. 세 사람은 둥글게 서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담소를 나눴다. 푸틴 대통령은 미소를 지었고 모디 총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1일(현지시간)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의미는 세 정상이 연출한 이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러시아·인도·중국(RIC) 삼각연대의 부활 가능성을 높였다.

RIC 프레임워크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가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을 견제해야 한다며 1990년대 후반 제안한 것이다. 이후 2003년 처음으로 3국 외교장관 협의체가 꾸려졌다. 중국과 인도의 영토 분쟁 등 간헐적으로 긴장 국면이 조성될 때도 회의는 중단되지 않았다. RIC 외교장관 회의는 2021년까지 19년 연속 개최됐다.

하지만 인도가 최대 교역국인 미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고 중국을 견제함에 따라 RIC 협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히말라야 국경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2022년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다음부터는 회의조차 열리지 않게 됐다.

RIC 부활을 위해 가장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은 러시아다. 러시아산 석유 최대 수입국인 인도·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은 “세 나라는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RIC 트로이카 체제가 다시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도 RIC 부활에 관심을 보였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RIC 협력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발전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포린폴리시는 “RIC가 부활한다면 세 나라는 1990년대보다 자신들의 주장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제조 역량, 인도의 서비스 산업, 러시아의 풍부한 천연자원 등 각자의 장점을 활용해 대미 의존도를 줄이고 세계 무역 흐름을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는 이번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지난 7월 란디르 자이스왈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RIC 회의 개최는 3국이 상호 편의에 따라 협의할 것이며 적절한 시기에 개최 여부를 알리겠다”고 말해 중·러와 온도차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가 러시아 석유를 구매했다는 이유로 25% 추가 관세를 매겨 총 50%의 관세폭탄을 부과하자 인도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됐다. 모디 총리는 7년 만에 전격 방중길에 올라 트럼프 대통령 보란 듯이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의 손을 잡았다. 특히 푸틴 대통령과는 공식 회담 시작 전 리무진 안에서 따로 단둘이 50분간 대화하기도 했다. 이는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을 택해온 인도로서는 이례적인 행동이다.

인도 SMC증권 수석연구원 시마 쉬리바스타바는 “SCO를 통해 RIC 축을 강화하고 루블·루피·위안화로 구성된 ‘R 블록’ 통화 거래를 촉진하는 것은 미국의 압력에 대한 전략적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인도 경제매체 민트에 말했다.


하지만 세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의심과 이해관계 상충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국경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인도는 남중국해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공세를 불안해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미국은 여전히 인도에 대체 불가능한 최대 수출시장이다. 중국 역시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결국 RIC가 부활할 수 있을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대인도 50% 관세 부과는 양국 관계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지만 기술·국방 협력 등 양국 간의 강력한 유대감을 고려할 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는 아니다”라면서도 “인도와 미국이 더 이상 특별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오랜 믿음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더디플로맷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전략에 변함이 없다면 이는 RIC 트로이카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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